손진동 소설가

사진설명1 : ▶친일파들의 기록이 낱낱이 저술된 「친일변절자 33인」(1995)

사진설명2 : ▶동아일보 등단 무렵의 오춘자씨(1963)

사진설명3 : ▶소설가 오씨가 현대문학 장편 공모에 당선된 「돌아오지 않는 江」 연재가 시작된 1969년 1월의 「현대문학」

1) 아, 이종린

그는 정미 승산리 출신으로 애국지사였다. 세세한 기록은 홍석표가 쓴 ‘당진인물지’에 있거니와 여기에선 알려지지 않은 기록을 첨가하려 한다. 임정 국무위원이던 김승학이 김구의 지시로 작성한 ‘친일파 263명 반민특위 살생부 초안’(월간중앙 2001년 8월호)에도 천도교 요인으로 그는 올라와 있다. 21년부터는 무명회(無名會)의 중심 인물로 일제로부터 언론수호를 위해 많은 족적을 남겼던 그였다.

그후 22년에는 전조선기자연맹이, 23년 5월에는 조선기자협회가 태동하는데 힘이 되었다. 김순석(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이 쓴 그의 ‘친일대열에 선 천도교계의 거물’에는 1930년대에 이미 친일노선으로 변절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본격적인 친일면모는 일제말기에 나타나는데 37년 8월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에서 중일전쟁 발발에 시국계몽을 위한 8개 반 22명을 구성해 전국 순회강연을 했는데 이종린은 이때 7반으로 전남북 일대를 돌았다. 38년 10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안에 국민생활 개선위원회가 설치돼 43명 순회 강연반이 전국 13도에 파견되었다.

이종린은 이때 제2부 의례, 사회풍조반의 위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김활란 등과 함께 국민정신 총동원연맹 평의원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이 연맹은 일제에 충실한 앞잡이들을 내세워 내선일체의 철저 및 황국신민화, 소위 고도국방 국가체제를 확립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삼천리 강토를 유린하였던 것이다.

41년 8월 이종린은 김동환, 최린, 한상룡, 장덕수, 이광수, 박흥식, 주요한 등 400여명의 친일 주구들이 부민관에 임전대책협의회라는 친일단체를 만들고 ‘우리는 황국신민으로서 일사보국을 맹서하여 전력을 다하여 협력할 것을 결의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같은 해 9월4일에는 부민관에서 임전대책연설회를 열었고 ‘삼십년 전의 회고’라는 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이로써 실천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회원 70여명을 총동원하여 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채권을 팔았다. 그의 친일 논설은 「친일논설선집」(실천신서 15, 임종국 편, 1987년)에 나와 있기도 하다.

해방 이후 이종린은 46년 천도교 최고의 예우직인 장로에 추대되었다. 그리고 48년 5.10선거 때 서산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50년 5월에는 2대 국회의원으로 재선되기도 했다. 돌아간 임종국 선생이 그의 변절을 애석해 했듯이, 그의 훼절이 나도 안타깝다.

그는 1914년 회동서관에서 「만강홍」이란 계몽성이 강한 신소설집을 내었고, 사후에 「황산집」(1882)도 묶여져 나왔다.(제3회 면천 진달래축제 기념으로 나왔던 시집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의 서문에 ‘... 황산 이종린 시인의 시혼(詩魂)이 배어 있는’ 하고 운운한 것은 잘못된 사실이다).

2) 장편 「돌아오지 않는 강」의

절필한 오춘자 씨

현재에도 소주뻘에 사는 절필한 소설가 오춘자(吳春子)씨를 독자들께 알린다. 이런 분이 살고 있구나 정도라도 알고 넘어가자.

그러니까 그녀는 1941년생이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국문학과를 나왔는데, 63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황야에서」가 당선되고 같은 해에 김동리 선생의 추천으로, 필명 ‘오지영’으로 현대문학에 추천을 받아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활동기간은 63년부터 72년까지로 대략 10년 기간 정도다. 그 기간 동안 열정적인 많은 단편소설이 쏟아지듯 생산되었다. 잡지 현대문학, 문학춘추, 사상계, 신동아 등지에 발표한 작품이 20편이 넘는다. 그리고 그녀는 또한번의 열정을 소설로 태운다. 68년 현대문학에서 장편소설을 공모했는데 소설 「돌아오지 않는 강」이 심사위원이던 백철, 안수길, 임옥인 선생에 의해 당선작으로 뽑혔다. 책에 흑백화보로 클로즈업된 그녀는 말 그대로 신예작가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그녀의 당선작이 1969년 1월호부터 10월호에 매달 연재된 건 물론이었다(더 자세한 내용은 올해 나온 「당진문학」 제2호를 참고하기 바람). 그녀가 70년 초반에 소설쓰기를 그만 둔 것에 대해선 묻지 않기로 하자. 몹시나 아쉬운 일이지만...... 그건 어찌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심훈 이후에 산문정신이 그녀에게 연결이 되고 현재에 다다른 지금, 또 소설이 현실에서 문학적인 노릇이 줄어드는 시절에, 바라기는 부질없이 공부하고 시대에 맞는 글쓰기에 엄청 매달리는 일밖에는 없다. 소설과 논픽션이 퓨전형으로 어울려 인문학적 상상력을 현실에서 맛볼 수 있게 하는 즐거움의 책이라야만 하는 시대정신이 살아 있지 않다면 이제 책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한 소설가의 삶이 온당하게 드러나지 못한 모지른 세월의 현실 앞에서 답답한 마음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건 사람이기에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다음 마지막회-명천 이문구 선생님께

※필자 이메일-dong579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