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악면 중흥리 이홍렬·이영자 부부
죽은 나무가 살아난다면, 그것도 나무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변신한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스꽝스럽게 춤추는 원숭이, 잠자는 사람 얼굴, 보는 사람에게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멧돼지, 암컷에게 구애하는 수컷 두루미….
송악면 중흥리 이홍렬(53)씨의 집에 가면 집안 여기저기서 갖가지 동물들을 구경할 수가 있다. 마치 동물원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살아움직이는 듯한 이 동물들은 이홍렬씨의 손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죽어있는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일은 어쩌면 자기 자신의 삶을 새롭게 살리는 길이기도 하리라.
이홍렬씨는 4~5년 전부터 나무뿌리 공예를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취미삼아 수석을 수집했던 이씨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본 나무뿌리 공예에 관심이 생겨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냥 취미로 하는 거지요. 특별히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라서 내세울 만한 것은 못되요.”
그러나 겸손한 이씨의 말과는 달리 나무뿌리로 만든 갖가지 동물들은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었다. 그림으로 치자면 정선의 산수화같은 고매한 멋이 아니라 김홍도의 익살스런 풍속화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작품이다.
이씨가 가장 아끼는 작품들은 멧돼지와 학 모양의 작품이다.
멧돼지는 송악초등학교 뒤에 있는 송악산에서 찾아낸 나무뿌리를 깎은 것인데 서너 차례나 버리려고 했다가 완성한 것이다. 뒤집어 보면 그냥 죽은 나무뿌리에 불과하지만 한쪽 면을 다듬어 만든 이 작품은 실제로 힘차게 달려가는 멧돼지를 보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구애하는 듯한 몸짓으로 서 있는 수컷과 부끄러운 듯 시선을 떨어뜨리고 있는 암컷. 두 마리의 학이 마주보고 있는 작품은 수컷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마치 우화 속에 나오는 원숭이처럼 긴 팔을 휘두르며 춤을 추는 모습을 하고 있는 조각품은 그 해학적인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이 작품은 철쭉나무 뿌리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곰방대를 물고 있는 할아버지, 악어, 사슴, 물고기, 낙타를 타고 가는 동방박사, 계란을 물고 가는 고양이, 개구리와 뱀, 앞 뒤가 다른 얼굴인 야누스 상, 거북이 등 수십 종의 작품들이 이홍렬씨의 집을 가득 메우고 있다.
구경 온 사람들은 이 진기한 모습에 욕심이 안생길 리가 없다. 마음에 드는 것을 달라고 조르는 사람도 있을만큼 이씨의 작품들은 인기 만점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좋은 재료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이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김종복씨(송악면 반촌리), 서정휘(송악면 고대리)씨와 함께 산으로 나무뿌리를 찾으러 다닌다. 이씨가 나무뿌리 공예를 하는 것을 알고있는 다른 친구들도 좋은 재료라 생각되면 가끔 주워다 주기도 한다고 한다. 죽은 나무가 아니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씨는 나무를 만지는 사람으로서 나무를 아끼는 마음 또한 당연하다고 말한다.
소나무가 죽으면 나무 뿌리 한가운데 딱딱하게 뭉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가장 좋은 재료가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썩거나 변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외에 모양이 좋은 다른 나무뿌리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철쭉뿌리로 만든 작품도 몇 개가 된다. 그동안 이씨가 뽑은 나무뿌리만 해도 트럭 한 대 분량은 거뜬히 넘을 정도라고 하니 취미생활의 정도는 넘어선 듯하다.
이홍렬씨는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이나 겨울철 등 일손이 바쁘지 않은 농한기에 주로 작업한다. 작업하는 곳는 대문 안쪽의 조그마한 공간이다. 나무를 깎고 다듬는 일이기 때문에 먼지도 나고 집안이 금세 깎여나간 나무토막으로 지저분해 지기도 하지만 식구들은 불평은 커녕 오히려 이 일을 좋아한다. 특별히 도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집안에 있는 공구를 사용해 작업을 하는데다가, 시간이 남을 때마다 틈틈이 하는 일이어서 빠른 시간 안에 작품이 완성되지는 않지만 그만큼 정성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의 세심한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의 뿌리가 다시 뻗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씨가 작업에 전념하는 동안 가족들은 어떤 작품이 나올까 궁금해 하며 지켜본다. 특히 아내 이영자씨(50)는 남편이 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작업을 할 때 이씨는 아내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손놀림이 바빠진다.
30년 간 함께 살면서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는 금술 좋은 이씨 부부는 큰 소리 한 번 담 밖으로 내보낸 적이 없다. 이를 증명해 주듯이 이홍렬씨 집 대문을 들어서면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조각한 공예품이 두 사람의 사랑을 자랑하듯이 진열되어 있다.
이홍렬씨 집에는 이씨 부부와 아들 부부, 그리고 재롱이 한창인 손녀까지 5명이 산다. 누구보다도 재미있게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그. 그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치매에 걸려 돌아가시기 전까지 4년동안 고생했던 어머니의 수족이 되어 뒷바라지를 다 해준 아내에게 평생을 갚아도 남을 빚을 졌다며 고마워 했다.
이씨가 나무뿌리공예를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가족들은 이 일로 더욱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필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