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여름, 월드컵의 열기가 한반도 전체를 뒤덮었다. 거리는 온통 붉은 색의 물결로 홍수를 이뤘고 집안에 있는 사람들도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으며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까지도 ‘대한민국’을 능숙하게 발음할 정도로 온 국민이 축구를 통해 하나가 됐다.
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4강 신화를 이루어 낸 월드컵 대표팀은 앞으로 우리나라 축구를 이끌어 나갈 축구 꿈나무들에게도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여자축구도 여자월드컵 본선진출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머지않아 여자축구도 세계의 강호들을 꺾고 다시 한 번 우리 국민들의 입에서 ‘대한민국’이 터져 나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기대를 확신으로 만들어 줄 예비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다. 바로 강가애, 강나루(14) 자매가 그들이다.
두 자매는 쌍둥이다. 생긴 것도 똑같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똑같다.
당진에서 계성초등학교를 다니다 6학년 2학기 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기 위해 안양 덕천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두 자매는 현재 안양 부흥중학교 축구부에서 활약하고 있다.
보통 1학년은 후보선수가 대부분이지만 둘은 일찍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주전으로 뛰고 있다.
“훌륭한 국가대표 선수가 될 거예요.”
마냥 축구가 좋다는 강가애(골키퍼), 강나루(풀백) 자매는 앞으로 우리나라 여자 추구를 이끌고 나갈 차세대 스타로서의 포부를 당당하게 밝혔다.
쌍둥이 자매에게는 계성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동생(강덕문, 5학년)이 있다.
남동생 역시 계성초등학교 축구부다. 두 자매는 남동생을 데리고 다녔는데, 동생이 축구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차츰 축구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한다.
동생을 가르치던 계성초등학교 축구부 유재호 감독의 눈에 띄어 축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두 자매는, 5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6학년 2학기 때 두 자매를 안양으로 보내는 유재호 감독의 눈에는 촉촉히 물기가 고여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발굴하고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보살펴 준 유 감독의 배려에 항상 고마워하며 지금도 당진에 내려오면 꼭 찾아가서 인사를 한다고 한다.
가애와 나루는 현재 안양 부흥중학교 전세환 감독의 집에서 살고 있다. 전 감독은 아직 자식이 없어 두 자매를 친딸처럼 잘 대해준다고 한다. 전 감독 집에는 두 자매 뿐만 아니라 8명의 축구부 학생들이 더 살고 있다. 전 감독과 그의 아내, 임미나 코치, 그리고 가애와 나루를 포함한 10명의 학생들까지 모두 13명이 한 가족이 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쌍둥이 자매는 외지에 나가 있지만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다. 두 자매가 떨어져 있는 시간은 시합을 앞두고 훈련에 들어갈 때다. 이 때 가애는 골키퍼 훈련을 받기 위해서 여주로 내려가, 여주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부터 특별히 코치를 받는다.
부흥중학교 축구부는 오전수업을 마치고 나서 오후 3시30분부터 6시까지 매일 2시간 30분동안 훈련을 하고, 하루 걸러 한번씩 밤에도 한 시간 정도 훈련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밤에는 매일 훈련일기를 쓴다.
가애와 나루가 가장 힘들어 하는 훈련은 체력운동이다. 하지만 축구에 푹 빠져있는 두 자매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눈치다.
훈련 때문에 빼먹는 수업이 많지만 가애와 나루는 학교성적도 다른 아이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방면에서 재주가 많았던 두 자매는 축구를 하기 전부터 공부하는 말 한마디 안해도 알아서 척척 했었다고 한다.
쌍둥이 자매는 학교에서는 믿음직한 축구선수지만 집에서는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나이다. 2주일에 한번씩 순성면 성북리 집에 내려오는 두 자매는 1년 여 동안 외지생활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집에 내려와 있는 시간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배우도록 해주고 싶었다는 두 자매의 어머니 손운숙(37)씨는 당진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배구선수였던 손씨는 중학교 2학년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지금까지 26년 동안 한 길을 걷고 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 하겠다는 손씨는 운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건강한 몸과 자아실현 뿐만 아니라 인성을 닦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손씨가 태권도를 할 때 손씨의 어머니는 항상 걱정하면서도 ‘너를 믿는다’는 말을 꼭 해줬다고 한다. 지금은 손씨가 축구를 하고 있는 두 딸에게 항상 해주는 말이다.
아이들과의 솔직한 대화가 최고의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손씨는 모녀지간에 편지도 자주 주고받는다고 한다. 솔직함에서 변치않는 믿음이 나온다는 자상한 어머니 손운숙씨, 아이들을 객지에 보내놓고 걱정이 많이 되지만 손운숙씨는 아이들을 믿는다. 어려서부터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예의바르게 잘 자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14살의 어린 아이들을 타지에 맞겨놓고 보니, 손씨는 그제서야 학부모들의 마음을 알겠다고 말한다. 쌍둥이 자매가 타지로 나간 후로 태권도장에 오는 아이들을 더욱 성심껏 가르치게 됐다고 한다.
가애와 나루의 꿈은 원래 축구선수가 아니었다.
가애는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손씨를 보며 가애는, 엄마, 아빠는 오래 살게 하고 싶어서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나루의 꿈은 경찰이 되는 것이었다.
경찰이 되고싶어 했으나 이루지 못한 엄마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경찰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지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한 가애와 나루는 축구에 대한 열정 또한 대단하다.
축구를 접한 두 자매는 새로운 꿈을 향해 하루하루 힘찬 걸음을 딛고 있다.
지난 10월21일에 있었던 소년체전 예선 1차 선발전에서 안양 부흥중학교는 패배의 씁쓸함을 맛보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기가 죽을 아이들이 아니다. 2차전에 대한 그들의 각오는 남달랐다.
아직도 귓가에서 맴도는 작년 월드컵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남자축구에 이어 여자축구가 만들어 낼 또하나의 월드컵 신화, 강가애·강나루 자매가 그 서막을 준비하고 있다.
이필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