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꽃 피는 자주감자 보셨나요?

지금은 사라진 우리나라 토종감자

재배자 대호지면 출포리 임 재 영씨

“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감자.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우리나라 동요 <감자꽃 designtimesp=1561>의 한 소절이다. 자주색 꽃이 핀 감자는 파보나 마나 자주색 감자라는 이 동요에는 아이들다운 서정에다 1900년대 초반 당시의 흔한 먹거리인 자주감자에 대한 상황적 정서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민족적 정서를 듬뿍 담아 노래를 했던 노래패 <노래마을 designtimesp=1563>의 노래집에 담겨 많이 불렸던 노래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세대에서 자주감자를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 저장성과 상품성이 좋은 개량종에 밀려 토종인 자주감자는 이제 동요 속에나 남아있는 신세가 됐다. 만일 이 한 사람의 수고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끝내 자주감자를 보지 못하고 그 이름마저 잊어버렸을 것이다.

대호지면 출포리에 사는 임재영(37세)씨. 그가 바로 자주감자 종자의 보유자이자 재배자인 사람이다. 전국적으로도 드물고 아마 당진군에서는 유일하게 자주감자의 종자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현재 농업기술센타가 가지고 있는 종자도 임씨의 밭에서 나간 것이다.

“자주감자는 둥글납작하고 골고루 눈이 박혀 발육이 좋아요. 속살의 색깔은 여느 감자와 다름없이 흰색이지만 껍질이 자주빛이지요. 맛도 여느 감자와 다름없는데 약간 아린 맛이 있어서 단맛을 싫어하는 사람에겐 좋아요. 조리용으로 쓰기 보다는 쪄서 먹기가 좋죠. 당뇨에도 좋다고 건강식으로 찾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중요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머리 속에는 유치한 질문 하나가 떠올라 사라지지 않는다. 자주감자의 꽃은 정말 자주색일까. 자주색 꽃이 핀 감자는 정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일까.

임씨는 허허 웃은 뒤 말했다.

“맞아요. 자주색 꽃이죠.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예요.”

그런데 듣기만 해도 이름이 예쁜 자주감자는 왜 사라진 것일까.

“아마도 상품성이나 저장성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자주감자의 껍질은 손톱으로 슬슬 벗겨도 벗겨질 만큼 연해서 캐낼 때 조심하지 않으면 상처나기 십상이죠. 게다가 습도와 온도에 예민해서 건조에도 신경을 좀 더 써야돼요.”

한마디로 약간 성격이 예민한 감자다. 그 모양을 보니 전혀 예민하게 생기지 않았는데...

둥글납작하고 눈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 모양이 고구마처럼 날씬한 것도 아니고 일반감자처럼 통통하게 예쁜 것도 아니라서 실망스럽다. 그러나 못생긴 토종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정이 가는지 모른다. 게다가 섬세한 감자라니... 땅맛, 손맛 떠올려 가며 약간 아릿한 맛까지 더듬으며 음미하며 먹어볼 만한 감자가 아닌가.

못생긴 토종 자주감자, 아무리 고상한 서양식 식탁 위에 올려놓아도 그것을 보면 서로 토종이라는 사실에 감격하며 마음까지 통할 것 같은 자주감자. 과거사에 한이 있는 한국 사람이라면 자주색 아린 맛에 눈물도 쏘옥 뺌직한 자주감자. 함께 나눌 정이 있는 사람끼리라면 차림이 누추하다 하지 않고 이것 한 소쿠리로 상차림을 해도 부족지 않을 자주감자.

찐 자주감자를 먹어보는 우리의 이런 감회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작 자주감자의 재배자 임재영씨는 이런 사소한 일로 찾아왔다며 우리 일행을 가볍게 나무랐다.

“사소하다니요. 감자밭 100평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두고 보세요. 토종감자, 자주감자 이야기에 놀랄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요.”

정말 자신있게 한 소리였다. 보유자 임씨 자신도 다 알지 못하는 토종 자주감자의 매력을 알려주고 싶었다.

임씨가 토종 자주감자의 종자를 얻은 것은 4년 전이었다. 10년 전에 4H 당진군연합회장을 역임한 뒤로 여기 저기 다니며 보고 듣고 배우기를 좋아하게 된 임씨는 이때 서산 어느 나이든 할머니로부터 이 종자를 얻었다.

“어쨌든 귀한 거니까 잘만 하면 상품으로 만들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차츰 우리 것을 되찾아가는 풍토이기도 하니까요. 올해 100평에서 20㎏들이 서른 세 상자 나왔는데 보통 감자보다 1,000원씩은 더 받았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업성이 없어요. 아직 수요도 확실치 않고 도매로 출하하기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한정판매만 하고 있죠. 지금 가지고 있는 종자만 쳐도 1,000평 규모는 넉히 돼요.”

임씨가 이렇게 한정판매를 하는 데서 소비자가 얻고 있는 이득은 더 컸다. 아는 사람들, 지역사람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감자생산에 더 많은 노고를 기울여야 한다.

“제 감자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분들이기 때문에 더 맛있게 만들어 줘야죠. 감자는 메마른 땅에 심어야 수확량도 적고 손이 많이 가도 맛이 있거든요.”

자주감자 재배자 임씨의 논밭은 아기자기 색색이다. 논농사는 물론이고 소 20두 사육에 버섯, 담배 뿐만 아니라 메주콩, 그리고 약초인 <당귀 designtimesp=1583>도 재배하고 있다. 관상용인 검은 고추, 아이들 간식거리로 심은 포도나무와 감나무, 이런 것들이 수북하다.

위로는 할아버지와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정호(9세), 효진(8세), 승재(5세) 아들 삼형제를 키우고 있는 임씨의 살림은 온통 잔손길을 바라는 것 투성이다. 이날도 바쁜 짬을 내어 아들 삼형제와 조카 녀석들을 위해 잠자리채를 열심히 만들었다.

“봄 무가 걱정이에요. 많이 심어놨는데...”

임씨는 마당 건너로 무밭을 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쌀이 쌀나무에서 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으니 이렇게 아무리 애써봐도 농업이라는 게 전망이 없어요. 타산만 맞으면 농업이 꽤 괜찮은 직업인데 농산물 시세를 보세요. 형편이 펼 수 있겠나.”

토종 자주감자를 재배하는 임씨에게도 농업여건은 마찬가지다. 비오기 전에 빨래를 걷어야겠다며 부인 최원영(34세)씨가 서두른다.

어른들 얼굴에 수심이 잠깐 지나간다. 그래도 아이들은 흙을 밟고 담뱃단을 나르고 자주감자를 먹으며 신이 났다. 그 아이들이 꼭 토종감자 같다. 자주꽃 아래 묻힌 단단하고도 섬세한 자주감자. ☎ 353-1134

김태숙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