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물상에 관한 경제학적 고찰 또는 인간학적 고찰
버려진 것들과 함께 부활하는 기쁨
작지만 당당한 삶 - 합덕읍 고물상 송 인 식 할아버지
“사람들은 위만 보지 아래는 볼 줄 몰라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 빛깔이 있다. 그 빛깔은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집에 살거나 어떤 옷을 입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생각과 어떤 느낌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 삶을 향유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번쩍거리는 옷을 입고 고상한 지위에 앉아있어도 빛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남루한 행색에 볼품없는 일을 하고 있어도 고매한 빛을 낸다. 빛나는 사람은 아무리 때와 땀에 절은 옷을 입고 있어도 향기가 나고, 빛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비싼 향수를 뿌려도 어색한 ‘치장’의 냄새가 난다.
이 빛깔과 향기는 자기 인생의 겉면보다 내면을 가꾸고 다듬어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것으로 조작이나 가공이 불가능한 것이다.
합덕읍 교동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사신다. 5척 단신에 단단한 체구, 모자를 벗어 정중하게 인사할 때에는 세련된 신사의 풍모를 지닌 나이 76세의 송인식 할아버지.
이 분의 직업은 ‘고물상’이다. 아침 먹기가 무섭게 리어커를 끌고 합덕읍내를 샅샅이 누비고 다닌다. 버리기 위해 가게 앞에 내놓은 종이박스와 빈 병, 고철과 신문폐지, 계란판을 주워 리어커에 싣는다. 여차 하면 찢겨져 쓰레기장에서 불태워 지거나 그나마 불타지도 못하고 괜스레 골칫거리가 될 법한 것들이다. 이것들을 챙겨 다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송할아버지의 일이다.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재활용의 전사’인 것이다.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 사이의 끝없는 여과를 통해 이 지상의 한정된 자원을 끝없이 되살려 쓰도록 하는 ‘되살려보냄’의 전령이다.
송할아버지의 일은 유통과 소비의 마지막 단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생산의 전단계 또는 생산의 한 과정이다. 새로운 자원을 이용해 새 물건을 생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새로운 물건을 등장시키는 마술과 같은 일이다.
버려진 것들은 버려졌을 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닌 할아버지는 남들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참으로 자유로운 분이다.
할아버지가 고물상을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이지만 할아버지의 가장 오래된 재산은 리어커다. 할아버지 말씀으로 그것은 일제시대부터 60여년간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돌보아온 고마운 도구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도구는 젊어서 운동으로 다져놓은 건강한 몸. 할아버지는 이 두가지로 38년간 합덕에서 연탄공장을 하며 아들 4형제를 잘 길러 모두 여의셨다.
재산을 좀 모을 만하면 사기를 당하고 다시 일어날 만하면 횡령을 당해 늘 그 자리에 머물렀지만 조그만 집도 있고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할머니도 계시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느냐구요. 내 나이 이래도 평생 일로 다져진 몸이에요. 내 몸 건강한데 왜 남의 도움으로 살아요? 아들들은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걔들에게 손 벌릴 까닭도 없구. 물론 아들들은 그만두라고 하지만 우리 부부 사는 동안은 내가 내손으로 책임을 질 생각이유. 야지. 그리고 운동도 되구. 다니다보면 여기저기 눈에 띄는 허연 쓰레기도 누군가 치워야지. 않겠어요? 그게 내가 이 지역에서 살아온 것에 대한 보답이죠.”
할아버지의 생활신조는 한마디로 ‘정직’이다. 할아버지의 삶 자체가 ‘일한 만큼 얻고 누리는’ 정직의 표본이다. 리어커를 끌고 얼굴과 옷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합덕시내를 도는 할아버지의 작고 다부진 모습 어디에도 지치거나 누추해 보이는 구석은 없다. 송글송글 맺힌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가끔씩 아는 이들에게 활짝 웃음을 보내며 할아버지는 빠르고도 힘있게 일하신다. 할아버지는 어디 외출할 일이 있어 나갈 때에도 줍는 일을 잊지 않으신다. 할아버지 주머니 속에는 작은 노끈뭉치가 항상 들어있다. 길을 가다 버려진 것들 중에서 소중해 뵈는 것이 있으면 눈여겨 봐두었다가 돌아올 때 묶어가지고 돌아오시는 것이다. 버스를 탈 때에도 마찬가지다.
계란판은 100장을 모아야 1,000원, 빈병은 1kg에 30원이나 50원이다. 개미처럼 정직하게 일하지 않고는 용돈 모으기도 수월치 않을 정도다. 그런데도 할아버지의 당당함은 놀랄 정도다. 마치 낮은 곳에서, 버려진 것들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내는 ‘심미안’을 선물로 받은 사람처럼 할아버지는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이 일을 하신다.
좥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느님은 알아주시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하느님은 보고 계십니다.좦
좥내가 받고자 하는데로 먼저 남에게 베풀어라.좦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성경의 경구는 이런 것들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빛나지 않는 곳에서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게 일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빛나보인다. 눈에 띄지 않는 남루한 차림으로 눈에 띄지 않는 골목길을 누비며 남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것을 건져올리는 송인식 할아버지에게서 향기가 난다.
할아버지 덕분에 다시 생각해보는 ‘고물상’의 경제학적 가치는 ‘버려지지만 가치있는 것들을 건져올리는 그물망’이다. 그리고 그 인간학적 가치는 ‘낮은 곳에서 빛나는 인간정신의 아름다움’이다.
김태숙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