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배형준 / 주연 : 김하늘, 강동원

영화의 초반은 다소 지루하다. 인물 간의 갈등도 미약하고 사건의 발단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하다. 색다른 풍경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도 아니고 자상하게 인물의 이력을 소개해주지도 않는다.

여주인공(김하늘)이 치매 할머니의 대답에 놀라는 심심한 에피소드에 이르면 본전 생각이 심심하게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명한 관객이라면 옆자리 친구에게 실망감을 쉽게 드러내지 말길 바란다. 이 영화 꽤 웃겨서 간간이 낄낄, 깔깔, 므흐흐 사람을 웃게 만든다.

폭소를 위해 영화가 던지는 미끼는 사기다. 사기는 여주인공의 정체이기도 하다. 즉, 사기죄로 복역하던 여자가 가석방으로 나와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속이는 과정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녀의 속임수가 기발하지는 않다. 임신을 빌미로 분위기를 잡고 거기에 말장난과 눈물 더하는 것이 그녀의 속임수이고 보면 차라리 토속적이고 예스럽다. 그런데 이런 뻔한 수법이 웃게 한다. 뻔한 고전적 수법이 통하는 것이다. 왜일까?

일단 사기 수법이 고전적이되 기가 막히게 앞뒤가 들어맞는다는 데 힘이 실린다. 다소 지루했던 영화 초반에 심드렁하게 깔아 놓았던 정보를 하나도 흘리지 않고 다 주워 담아 재활용하는 그녀의 순발력 앞에서 관객은 무릎을 친다. ‘저 여자 정말 사기꾼이구나’ 싶은 거다.

초반의 평탄함에 영화 속으로 몰입하지 못했던 관객도 이때부터 그녀의 사기 순발력이 어디까지 이르나 관심을 갖는다. 그녀의 술수에 남자(강동원)가 일방적으로 당해 궁지에 몰린 생쥐 꼴이 되는 걸 보면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여기서 인물들의 위치를 다시 살펴보자. 여자는 전과자고 사기꾼이다. 일반적인 사회 통념상 긍정적인 인물로 볼 수 없다. 반대로 남자는 시골 약국의 약사로 한국 사회의 모범생 코스를 밟았음이 그 입성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그녀의 사기는 부정적인 인물이 긍정적인 인물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비극으로 볼 수도 있다. 평범한 관객으로서는 화가 나야 한다. 그런데 웃긴다. 이상하다.

더욱이 영화의 장소 배경이 되는 용강과 극중 인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자의 가족은 과거 지향적이다. 이웃 사촌의 정이 생생한 시골 마을에 아버지의 절대적 권위가 살아있는 혈연 중심의 가족이다. 영화는 자연히 보수적인 사회 통념을 극적 세계관으로 깐 셈이고 거기에 따르면 분명 여자는 악한인데도 관객은 그녀의 사기(악행)에 동조해 웃는다. 묘하다.

그렇다고 과거 지향의 인물들을 조롱하려는 데 이 영화의 목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랬다면 남자의 가족들은 지나치게 순박하거나 비리를 숨기고 있어야 할 터인데 그런 구석은 없다. 가족들은 아버지부터 서열대로 교장 선생님, 경찰, 택시 운전기사, 약사로 순박함과는 다소 거리를 둔 직업군(여성은 직업을 밝히지 않는다)을 형성한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평범할 뿐이다. 분명 영화가 이끌어내는 웃음은 비웃음이나 냉소가 아닌 뒤끝 없는 웃음이다. 과거 지향적인 사회 통념을 헤집는 악인의 사기에 왜 우리는 동조하는 걸까?

여기에 사회 통념이라는 굳은 땅을 뚫고 고개를 내민 진실의 싹이 있다. 감옥과 시골로 대비되고 가석방 죄수와 약사라는 대비와는 아무 상관없는 혹은 오히려 그것을 역전시켜 누가 진심을 말하는가로 선과 악이 갈린다. 사회 통념의 악과 선을 따지는 일은 불필요하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여자요 그 진실을 왜곡하고 믿지 않는 것은 남자이니 관객은 여자편을 들어주어 남자의 패배와 당혹감에 낄낄거리며 웃는 거다. 영화는 지극히 가볍고 소모적으로 (인공적인 혹은 과거 지향의) 사회 통념을 소비하고 거기에 진실을 깔아 웃음을 생산한다.

사실 그렇다. 여자는 처음부터 진실했다. 가석방 심사에서도 심사원들에게 말한 언니는 실재하며 오리는 정말 결혼하는 언니를 위해 정성스레 깎았다. 반지를 훔치지 않았으며 단지 가방을 찾기 위해 용강으로 왔을 뿐이고 약혼녀를 빙자하지는 않았다. 그 진심을 믿어주지 않고 그녀를 (그녀의 성질을) 건드린 게 남자의 죄요 악이다. 사회 통념 따위가 다 무엇이겠는가. 웃음은 상황에서 빚어졌다가 진심으로 분위기를 잡고 뛰어난 기억력과 순발력에서 창조된다.

그렇게 웃음을 위해 사소한 통념 따위는 무시하는 정공법으로 영화는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래서 간단히 소비되고 마는 정형화된 인간상들이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당연한 삼각관계, 능력이 있으면서도 시골에 남으려는 참한 남자와 도시에서 굳건히 터를 잡으려는 도시 애인, 여자를 쉽게 쫓아온 감방 동기들과 근거 없는 악감정 소멸, 언니의 외면과 설명 없는 포용 등등.

그럼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웃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일관성을 보임으로써 원하던 바를 이루었다. 역사를 소비하고 스케일을 얻든 실화를 소비하고 액션을 얻든 통념을 소비하고 웃음을 얻든 하나를 이루면 성공하는 거다. 그리고 그만큼의 반응을 발판으로 영화가 좀 더 다양해지면 좋은 거다. 다만 영화는 쉽게 소비했던 통념을 우리는 그리 쉽게 소비할 수 없고 새롭게 바꿔나가야 할 짐을 지고 있으니 마냥 웃을 수 없을 뿐이다.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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