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햇살을 등에 지고서 버림직한 나무토막에 사포질을 해 대는 그녀들 곁을 지나자니 금방이라도 매끄럽고 따끈하게 달구어진 나무토막을 여문햇살에 들어 올리면 불꽃이 필 듯도 하다. 가만히 보니 그녀들 손엔 망치와 톱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궁금함을 만지작거리며 그 뒤에 줄을 서 본다.

안산에서 시부모님을 모시다가 남편 직장을 따라 4년 전 당진으로 이사 온 신선미(37)씨는 낯선 곳에 이렇다 할 친구도 없고 배울 거리도 없기에 집에서 소품들을 리폼하기 시작했단다. 재활용 목재나 소가구에 먼저 사포질을 곱게 하고 그 위에 페인트를 칠하고 필요하면 덧칠하고 마감재를 발라주면 완성이다. 자칭 ‘핑크공주’인 선미 씨의 집 구석구석에는 전국에서 주워 온 소품들이 옅은 핑크빛으로 태어나 우체통, 쌀통, 그릇장, 약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부터 선미씨의 것인 양 친근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큰아이 영민(송악초2)이는 “우리 엄마는 쓰레기를 갖다가 너무 예쁘게 만들어요”라며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소문도 내고 학교 오가는 길에 쓸 만한 나무가 있으면 챙겨오거나 너무 크다 싶으면 엄마에게 즉시 알려준다고. 영민이가 주워 온 나무토막을 종종 요긴하게 쓴다는 선미 씨는 이미 초등학교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 사람을 모르면 간첩’으로 통한다.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집안형편 생각하고 가만히 접었다는 선미 씨는 전통찻집을 차리는 것이 꿈이다. 지금 그 꿈을 펼치기 위해 아기를 돌봐주며 자금을 준비하고 있단다. 또한 손수 만든 소품들로 전통찻집을 꾸미기 위해 고가구와 옹기도 모으고 있었다.

“마당에는 꽃 잔디로 테두리를 하고 1층에는 찻집으로 2층은 공방을 열어 함께 만들고 3층엔 집을 꾸미고 싶다”는 선미 씨. 그녀는 미래의 고객들을 날마다 만나고 있었다.

“임자, 돈 주고 사지 누가 보면 지지리 궁상이라고 하지 않겠소”라며 애정 어린 지청구를 한다는 남편 이한기 씨와는 서로 존대하며 이름을 불러주고 한단다. 또 서로 간에 ‘임자’하며 지그시 불러주는 애칭이 사랑도 빨리빨리 채우고 쏟는 요즘 세상에 드물어 보이는 이름이어서일까 해 묵은 포도주와 친구처럼 귀하게 여겨진다. 그릇장을 만들고 있는 조은수(42)씨는 사과궤짝 7개를 구하려고 추석 전부터 수소문 해 놓고 거의 일주일 만에 구할 수 있었다며 요즘 아파트 주변 청과물상회도 사과궤짝 품귀현상이 났단다. 하루 만에 제법 그릇장이 모양을 갖추었고 색을 입히는 일만 남았다.

함께 수납장을 만들고 있는 임지미(30)씨는 “사포질을 충분히 해야 페인트의 색이 곱게 입혀지는데 사포질이 제일 힘들어요. 근데 예쁘다고 하니까 또 만들게 돼요”라며 딸아이에게 줄 거라며 감기기운도 뒤로 하고 붓을 들고 바람을 등지고 앉는다. 선미 씨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약장은 최근에 대장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계신 아버님에게 보내 드릴 참이다. 수북한 약봉지가 식탁 위에 그냥 있어 서랍에 감춰두면 드시는 걸 잊을 테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이 약장이 딱이다. 올리브 그린으로 지붕을 덧칠하고 사포로 가볍게 훔치고 나니 아버님을 향한 선미 씨의 마음이 숨어서도 보이고 그저도 보인다.

꿈을 향해 하루하루를 사포질 해 가는 선미 씨의 어깨를 짚고 가는 바람과 쉬지 않고 토닥이는 가을햇살을 보니 이제 꿈을 꿔도 늦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