ꡒ복직결정을 하고 난뒤 우선 착잡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리던 교단이었지만 6급이상 공무원 단결권등 ILO에서 권장하고 있는 사항을 이루지 못한채 복직한다는 것이 아쉬웠었죠. 그러나 일단 아이들을 만난다는 건 아쉬움 이상의 큰 기쁨이었습니다ꡓ

지난 89년 천안 목천고에서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후 지난해 3월 복직해 만 1년을 맞는 합덕중학교 김창태 교사는 그때의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ꡒ처음엔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어요. 전교조 교사에 대해 학부모님들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다 다양한 색깔의 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모방하고 흉내내는 아이들의 모습도 적쟎은 충격이었구요ꡓ

그러나 그가 했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다. 오히려 교육개혁에 대해 공감하고 인정하는 동료교사들은 그에게 새로운 힘이 되어 주었다. 글짓기를 통해서 엿본 아이들의 의식은 그 나름의 건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농촌을 꼭 지키겠다든지,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든지,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선 문화적 시설이 갖추어 있어야 한다든지 등의 제법 어른스런 지적도 할줄 알았다.

김교사는 바로 거기에서 희망과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동시에 보았다.

ꡒ문제는 교육이 아이들의 창의적이고 건강한 의식들을 받쳐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획일적인 평가기준, 즉 성적하나로 아이들의 모든 것을 평가함으로써 아이들의 다양한 개성이나 소질을 결과로 나타내주지 못하는 교육제도가 문제인 거죠ꡓ

사교성이 있는 아이, 예술적 감수성이 있는 아이, 나서길 좋아하는 아이들 모두를 각기 상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 인정하는 교육이 다름아닌 김교사가 외치는 참교육의 내용이었다.

ꡒ 비록 좁은 울타리 안에서였지만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것들을 실험하고 실천해 보았던 한해였습니다. 팔씨름 대회나 모듬 벽신문 만들기, 그리고 조회시간에 3분정도 환경문제에 대한 교육도 했었죠. 쉽게 이해하고 잘못된 것은 바꾸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무척 기특해 보였습니다ꡓ

그리고 해직시절에 어렵게 배워두었던 수지침을 이용해 아이들을 치료해 주었던 것이 흐뭇한 기억중의 하나란다.

ꡒ가정방문을 많이 못한 것과 아이들에게 다양한 공동체 놀이문화를 제시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올해에는 더 많은 걸 고민하고 열심히 노력해야죠ꡓ

그의 희망은 거리에 있었던 예나 아이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나 변함없다. 바로 남을 누르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삶을 실현하는 교육, 참교육을 실천하는 만년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