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8월 29일 석문방조제

거대한 파도를 긴팔로 묵묵히 견디는

장엄하고 꿋꿋한 기상

난 거기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건 잠시뿐

방조제 주위에 널브러진 쓰레기 쓰레기들

폭력시위 뒤 학원의 모습이 이랬던가

폭우로 인한 수해의 현장이 이랬던가

맥주병 소주병 음료수병

맥주깡통 음료수깡통 부탄가스깡통

비닐 아이스박스 철판 종이 판자들

귀저기 속옷 양말에 온갖 음식 쓰레기들

누가 버린 것인가

마음씨 고약한 술주정뱅이 아저씨

질서란 글자 의미도 모르는 무식한 아주머니

아니면 철부지 어린아이겠지

아닐지도 모른다

자녀들에게 훌륭한 사람되라 가르치는 부모님

자연보호를 외치는 어느 환경운동가

어쩌면 나와 내가족일지도 모른다

왜 버렸을까

내차 내집이 지저분한 것보다 낫고

보는 이 없고 당장 잡혀가는 것도 아니고

다들 버리는데 나만 안버리면 손해니까

손으로 집게로 삽으로

구더기 난 쓰레기들을 부지런히 줍는다

소리없이 땀이 흐르지만

난 거기서 별로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지나가는 이들마다

버린이들을 욕하고 줍는 우릴 위로했지만

난 그들조차 믿을 수 없었기에

보람보단 오히려 슬픔이 앞섰다

백명중 열명정도만 버린이들이라면

내 슬픔 조금은 참을 수 있을텐데

스스로(自) 다스릴 줄 아는 (治) 사회

믿고 웃는 당진에 살고 싶다

쓰레기 가득싣고 청소차는 멀어진다

거기 내희망도 함께 실어보낸다

통일보다도 더 우선하여 간절히

내일부터는 내년에는 부디

/이일봉(석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