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장마는 완전히 걷혔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입추도 지나 가을이 문턱에 서 있습니다. 계절의 해그림자가 바뀌는 것이 보입니다. 길어지는 해그림자는 아직도 남은 무더위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가 됩니다.

높고 파란 하늘에는 언제나처럼 고추 잠자리가 한가롭습니다. 그런데도 매미, 쓰르라미는 울음으로 아직도 숲속 녹음을 가득히 채우고 있습니다.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그 소리는 한 주일밖에 안되는 일생을 위한 그들이 할 수 있는 하느님 섭리에 가장 충실한 노력입니다.

삶은 그렇게 온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나에게 들려주는 절규입니다.

우리들은 날씨가 너무 덥다고 햇볕이 따갑다고 하지만 가을에 우리 앞에 놓여질 과일과 햇곡식은 이같은 따가운 햇빛을 원합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삶은 하느님의 섭리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즈음의 나는 순간을 모아 천년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순례의 길은 때로는 고달프다고 하지만 성체가 나의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성체는 이 세상을 떠나는 이들에게는 평화로 남아 마음에 노자가 된답니다.

우리 삶은 순례의 여행입니다. 나는 아침마다 매일의 나의 십자가를 지고 순례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때때로 이 삶을 지나가는 동안 겪어야 하는 고통이 있는데 그것을 나는 영혼의 성장통이라고 합니다. 수없이 겪어오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얼마를 더 겪어야 할지는 모릅니다. 하늘나라를 기다리는 나의 피정의 삶 안에서 모든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오늘 새벽도 미사를 위해 성당으로 향하는 나의 육신은 고달프지만 또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숨이 차고 호흡도 거칠어지지만 미사에서 만날 성체를 기억하면서 나는 영혼에 평화와 기쁨과 빛과 확신과 열정을 얻습니다.

성체는 우리에게 음식과 음료의 형상으로 주어집니다. 육신의 삶에서 물질적인 음식과 음료가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자라나게 하며 우리에게 힘과 기쁨을 주듯이 성체는 영신적인 삶에서 같은 효력을 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체 안에 존재하시며 성령께서 생명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몸과 우리의 인성이 일치되는 것입니다.

성체는 일치의 샘입니다.

1차 마리아 뽈리의 기간은 내내 병원에서 항암제를 투여받았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힘든다면 이제는 끝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기워 갚아야 하는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2차 마리리 뽈리가 시작된 뒤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한번 마리아뽈리를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밤 동안을 생각을 거듭했고 새벽이 되었습니다. 오늘(2차 끝나기 전날)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 하는 것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다가 용기를 내어서 아들 요한과 아내 리디아에게 동의를 구했습니다. 미시시간은 맞추어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섰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나에게 엄청난 시련이었지만 만남의 기쁨으로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그저 가고 싶었습니다. 나의 참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형제들의 얼굴이 그리웠고, 정겨운 껴안음이 그리웠습니다. 말로는 말로는 할 수 없는 그 안에서 일치를 만났습니다.서로 끌어 안으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마음의 일치를 느낄 수 있을까?

끼아라는 우리사이를 묶어주는 성체라고 하였습니다. 성체는 우리들의 봉인이라고 했습니다. 미사만이라도 참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의 이유였던 것이 성체는 우리를 한데 묶어주었고 우리의 봉인이 되었습니다.

하루가 어렵지만 하루가 육신적 고통으로 살아가는 것을 힘겹게 느낄 때도 있지만 그리고 지금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청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나는 현 순간도 하느님의 뜻을 살고자 합니다. 선분이 무수한 점으로 이루어진다는 수학의 정의처럼 남아 있는 나의 삶이 그렇게 현 순간의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것으로 무수히 연속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2004. 8. 8

※권건오(59)씨는 축협사료공장 공장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2003년 4월 폐암말기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권씨는 현재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갈산동에서 부인 김애숙(55)씨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