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사회는 극도의 혼란과 분열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사회적인 갈등(葛藤)과 불안 속에 살고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경제는 끝간데 없이 나락의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져 가는데 이를 바로 잡고 국민의 마음을 보듬어야 할 나라의 대표들은 허구한날 자기의 주장만이 옳다고 사자후를 토하면서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모든 것이 끝장나는 양 정쟁의 연속이니 불쌍한 백성만 방향을 잃고 나날이 어렵고 힘든 고난의 길을 방황하지 않는가.

국민이 뽑아준 대표들이 모여 국민이 위임한 직분으로 신성한 입법기관에서 서로가 합의하여 만장일치에 가깝게 통과시킨 법을 어느날 갑자기 상대가 밉다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나 몰라라 반대하며 절대로 안된다 하니 도대체 이 나라의 백성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 뿐인가. 자기들의 이익에 배반한다면 아무리 상대방이 잘하여도 좀체로 인정할 줄 모르고 물고 늘어져 사회적인 혼란과 국론분열의 선봉에 서는 파렴치를 식은 죽 먹듯이 반복하는 이런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도자들이 이러하니 지역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다반사로 발생하여 자기 아니면 안된다는 그릇된 풍조가 만연하여 화합은 커녕 분열과 서로의 반목만을 키우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웃 평택에서는 대한민국의 최고 재판기관인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이 난 소송건에 대하여 불복하며 이를 뒤집으려 국회에 입법청원을 하느니 어쩌느니 갖은 억지와 횡포를 부리고 좀체로 인정할 줄 모르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였는가. 억압의 정치에서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분출되는 욕구를 한꺼번에 송두리째 다 챙길려는 긴박한 마음에 참된 민주주의를 배우며 실행하지 못한게 큰 원인이 아닌가 부족한 소견으로 진단해본다.?

우리는 흔히 서로가 마음이 맞지 않고 생각이 다를 때 갈등(葛藤)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의 한자 의미를 좀더 설명하자면 잘아시다시피 칡넝쿨과 등나무의 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칡나무와 등나무는 참으로 현명하다. 왜냐하면 칡나무는 나무를 감고 올라갈 때 항상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어 함께 엉키지 않고 나무를 또는 울타리를 타고 올라간다. 이를 선현들은 서로가 함께 할 수 없음을 일컬을 때 갈등이란 표현으로 써왔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비유에?淪?필자는 색다른 해석을 붙이고 싶다.

두 나무는 너무나 현명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두 나무는 절대로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각자가 아주 슬기롭게 생존을 영위하며 공멸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여 종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할줄 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안정적이고 평안한 국가와 지역을 만들 수 있는 일들을 나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과 편견으로?琉D“?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대를 인정해주고 배려하고 이해해주며 서로 협력할 줄 아는 진정한 민주 시민의 힘을 키워 나갈 때 올바른 나라와 지역을 이뤄 백성이 편안하게 잘사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