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손수 지은 300여편의 한시 모아 책 출판 준비
손녀에게 배운 컴퓨터 솜씨도 수준급
안태순(80)씨를 만난 것은 그의 집안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도 팔순이라고 들었건만 의외로 정정한 안씨의 목소리에 약간 놀라기도 했다. 면천향교 전교를 지내고 지금은 초로에 묻혀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그의 손녀가 내어주는 인스턴트 녹차가 아닌 ‘녹차’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젊었을 적 이야기
안씨는 1926년생이다. 당진토박이인 안씨는 신평면 도성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도성리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일제치하에서 보낸 안씨도 힘든 시절을 보냈다. 배급을 받아 간신히 끼니를 연명하기도 하고 도망다니기도 해봤다. 그러나 안씨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운이 좋았다. 1살이 부족해 징용을 피할 수 있었고, 징용당할 나이가 되자 해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재작년까지 60여년을 함께 산 아내도 해방 직전에 만났다. 일본군 정신대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안씨에게 시집보낸 것이다. 그 덕분에 안씨는 아내 얼굴도 못 본 채 장가를 가게 됐다.
해방 후에는 공무원이 됐다. 1948년 신평면사무소로 들어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지만 당시에도 안정적인 직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씨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공무원 생활을 접고 농부가 됐다. 묵묵히 농사짓는 농부. 농사를 지으며 한 곳에서 살아왔고, 자녀들을 키웠고, 지금까지 매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한시 짓는 것을 즐겨
안씨는 젊었을 적부터 한학에 심취해 있었다. 완고했던 할아버지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한글보다 한문이 더 익숙했다고. 시일이 어느 정도 지나고 안씨는 한시를 짓기 시작했다. 틈틈이, 그리고 생각이 날 때면 시를 짓곤 했다.
그 한시에는 안씨가 직접 겪었던 일제 치하의 상황, 6·25 발발 당시의 처참했던 모습 등이 담겨있다. 그 이후로도 안씨는 계속 한시를 지었다. 개인의 경험도 좋고, 사회의 모습, 그 당시의 세태 등 다양한 소재로 한시를 지었다.
지금은 그 한시들이 많이 없어지고 약 300여수만 남아있다고 한다. 안씨는 이 한시들을 모아서 책으로 편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고 싶어”
그 책을 출판하는 이유는 후세에 교훈이라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학을 숭상했던 안씨. 성균관에서 유림지도자 과정을 밟고, 면천향교 전교를 4년 동안 했으며 충효교실을 10년 동안 운영해온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흔들리는 이유가 ‘교육’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끔 TV에 나오는 흉악사건 등을 볼 때마다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그 대안으로 한문교육을 강조했다. 한문은 우리 교육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아마 그는 한문 그 자체보다는 한문 속에 녹아있는 우리 선조들의 교육관과 지혜를 중요시하는 듯했다. 또한 ‘온고지신’을 강조하면서 우리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안씨가 자신의 한시를 모아 책으로 만든다면 후세에 대한 교훈인 동시에 역사적인 기록이 된다. 우리나라 현대사회의 격렬한 변화를 직접 보고 겪은 그의 소중한 경험이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씨의 작업은 지금은 멈춰져있다. 한시를 모두 컴퓨터에 입력해놓고 출판사와 이야기를 했으나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출판을 못하고 있다. 안씨는 3남3녀를 뒀지만 대부분 결혼과 함께 외지에서 살고 있고 같이 살고 있는 막내아들도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주변의 유림들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이야기했지만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그인지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녀 어깨너머로 배운 컴퓨터 솜씨
한시는 지금 출판하기 위해 컴퓨터에 먼저 입력하는 작업을 했었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안씨이기에 손녀와 함께 작업을 했다. 손녀가 컴퓨터로 입력해놓으면 안씨가 그것을 한문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사실 그것만도 대단한 일이건만 안씨는 컴퓨터를 의외로 상당히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직접 컴퓨터를 켜고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작업이 끝나자 컴퓨터를 끄기까지. 자연스러운 손놀림에 약간 놀랍기도 했다.
컴퓨터 솜씨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안씨가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다. 물론 모르는 것은 손녀에게 물어봤을 터이지만, 80의 나이에 컴퓨터를 다루는 그의 손놀림이 놀라움을 넘어서 신선하기까지 했다.
아내 잃은 후 전보다 외롭지만....
안씨는 2년전 아내를 지병이었던 고혈압과 당뇨로 잃었다. 19살 때 결혼한 후 58년 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것이다. 아내를 떠나보낸 후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허전함을 많이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 허전함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채우고 있었다. 전보다 독서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시를 짓기도 하고, 과거 사진을 보며 회상에 젖기도 한다. 그래도 안씨는 아직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는 ‘젊은 노인’이었다. 컴퓨터를 능숙하는 다루는 ‘젊은 노인’이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