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지하철 안에서 새파란 처녀가
젖은 머리칼을 휘휘 내두르며
친구랑 떠들고 있다
신문 읽는 내 손등에 목덜미에
물이 뚝뚝 떨어져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덩달아 신문도 젖어버렸다
소녀 시절
여러 번 같은 꿈을 꾸었다
누군가 붓에다 먹을 찍어
내 얼굴에다 자꾸 글씨를 썼다
눈을 떠보면(여전히 꿈속이었지만)
내 얼굴에 글씨를 쓰는 사람의
얼굴도 글씨로 가득했다
(그는 누구였을까)
(무슨 글자들이었을까)
실제로 출판사에 다닐 땐 내 입 안에
글씨로 엉킨 실 뭉치가 가득 찬
날도 있었다
(결핵성 늑막염으로 가래를 퉤퉤 뱉고 다녔다)
집에 돌아와 목욕탕에서 거울을 보며
먹을 찍어 얼굴에
글씨를 써보았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 시절 내 얼굴에 글씨를
쓰던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 1979년 <문학과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 「도솔가」 등으로 등단
- 시집 「또다른 별에서」, 「어느 별의 지옥」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불쌍한 사랑기계」,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문학상 수상
- 현재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