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잘 나가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안부를 물었더니 고생 좀 했다면서 들려주는 얘기였다.
지나쳐서 얻은 병
건강을 다지려고 집 앞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했단다. 두세 바퀴부터 시작해서 계속 운동량을 늘렸다. 어느 날 열 바퀴인가를 돌았는데 갑자기 학교 건물이 빙 돌면서 어지러워 운동을 중단하고 병원엘 갔다. 안과 의사가 눈알이 떨어졌다고 했다.
수술을 할 수도 없다며 입원해서 꼼짝 말고 반듯이 누워 떨어진 자리에 다시 붙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꽤 오랜 기간을 병원 천장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했다. 다행이 정상을 찾았지만 달리기는 그만 두었다는 얘기였다.
며칠 전 이웃 집 아저씨를 만났는데 목발을 집고 있었다. 워킹 머신으로 달리기 운동을 좀 많이 했는데 무릎에 심한 통증이 와서 병원을 찾았더니 무릎 관절 막이 터졌다고 해서 수술을 했다는 얘기였다.
건강을 위한 운동도 지나치면 화가 되는 것이다. 먹거리도 그렇고 보약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병이 된다고 했다.
잊혀지지 않는 분노
현충일 전날 일요일에 집 근처 교회에서 주보 사이에 유인물이 끼어 있어 보니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하는 6.25의 노래 가사였다. 어렸을 적에 숱하게 부른 노래지만 섬뜩하다는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에, 국내외 정세와 국민 감정이 천지개벽 한 것 같이 달라졌는데 그것도 교회에서 처절한 원한과 잔혹한 복수의 뜻이 새겨진 이 노래 말을 왜 나눠준 것일가?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성공한 이 교회 원로 목사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기독교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남의 허물을 용서하라고 가르친다. 명망이 높은 원로 목사는 기독교의 기본도 모르는 엉터리란 말인가?
북한 감싸 안기가 지나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걱정이 드러난 한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25가 남긴 상처를 그대로 되새기는 것도 문제지만 상처가 철저히 무시된다면 그 것도 문제일 것이다.
증오와 분노의 해소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에 주어진 어려운 과제라고도 한다. 정치권의 증오, 노사간의 갈등, 세대간의 불신, 계층간의 분노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증오와 분노”와 “갈등과 불신”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증오와 분노, 갈등과 불신은 해소하기보다는 완화하고 이해하는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절대적인 방법은 절대적인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지나치지 않는 지혜
아인슈타인은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KISS(Keep it simple, stupid)의 법칙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단순하고 우직함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뛰어난 학식이나 특출한 지혜보다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 귀하다는 뜻일 게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병이 되고 무리하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미덕으로 일컬어지는 겸손도 지나치면 덕이 되지 못한다. 과공(過恭)이 비례(非禮)라는 말도 있다.
어느 일에든 지나치지 않음이 최상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중용(中庸)의 참뜻을 되새기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