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시(Gypsy)의 전설처럼 나도 이 세상에 소풍을 왔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잃었었는데 하느님의 부르시는 소리에 화들짝 꿈에서 깨어난 듯 합니다. 불장난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이 세상은 참 아름답습니다. 나는 아내와 아들과 딸 그리고 동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이웃들에게서 사랑도 넉넉하게 받았습니다.
마음이 상처받고 감당하기 힘든 일로 지쳤을 때도 있었지만 여러분의 따뜻한 말 마디와 너그러운 눈길은 저에게 감동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살아오는 동안 함께 곁에서 저를 아껴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제 탓으로 인하여 여러분을 서럽게 하거나 괴롭게 하거나 가슴 아프게 했을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용서를 청합니다.
인간으로의 한 삶 동안을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노력하며 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위해서 제 몫의 얼마를 이루었는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려는 의지를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왔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합니다. 이 세상으로 불려온 소명을 다하고자 했지만 저의 부족함으로 별로 공헌한 것은 없습니다. 부르심은 하느님의 뜻이지만 소명에 대한 준비는 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자라는 내 능력으로 인해서 다 이루어 낼 수는 없었습니다.
저의 삶은 화려하지도 돋보이지도 않습니다. 모자라지만 그나마 소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랑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섭리하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제가 오늘까지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살아온 것은 하느님께 의지하는 희망입니다. 희망은 우리의 삶에서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희망이란 미래지향적인 것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힘과 위로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비록 현재의 자신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참고 견디어 냅니다. 그러나 희망을 잃으면 닥쳐오는 일보다는 밀려오는 마음의 중압감으로 인해 쉽게 실망하게 됩니다. 때로는 삶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우울하고 쓸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아직도 판도라의 상자 속에는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희망은 여전히 파랑새처럼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후회없이 살다가 하늘나라에서 만납시다. 이곳에서의 우리의 만남은 하늘나라에서도 이어지는 아름다운 인연입니다.
후기 : 이렇게 이제까지 쓰던 글의 끝을 맺으려고 합니다. 긴 시간 동안 마음을 적어서 남기고 싶었습니다. 별로 가슴에 남을 내용은 없으나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음에 두고 읽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나에게 남아있는 사랑을 여러분에게 작지만 남기고 싶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저의 아우를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의 끝은 내가 먼저 맺을 것이라는 생각 이었는데 멀쩡하던 아우를 하느님이 먼저 불러 가셨습니다. 그는 나와 같은 생각으로 안구기증도 하고 헌체(獻體:시신기증)도 하였습니다. 아우의 육신은 며칠은 가톨릭 의과대학 연구실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서 머물 것입니다. 아마 하느님께서 저보다 아우를 더 사랑하셨는가 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남아있는 아우 식구들이 외롭거나 쓸쓸하지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곧 떠나서 아우를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당진에서 함께 산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언제인가는 우리 함께 하늘나라에서 만날 것입니다.
※학부에서는 수의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는 체외수정을 연구했다. 일본 북해도 낙농학원대학에서 전자 현미경으로 생식세포의 단계별 변화를 연구했다. 당진에서 동물병원을 개설·운영했고 당진축협배합사료공장장을 맡기도 했다. 국내 유전자변형연구에 참여도 했고 국립공주문화대학 애완동물과와 공주대학 특수동물학과에서 10년 넘게 강의를 했다. 말기 폐암으로 1개월의 생존을 선고 받고 하루 하루를 이어 가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언제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30년을 넘게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학래산방(鶴來山房) 에서 살다가 지금은 경기 안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