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덥던 더위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고 밤에는 제법 쌀쌀해졌다. 지긋지긋했던 더위가 물러나서 좋지만 어느 덧 한 해의 후반기로 돌아선다는 느낌은 역시나 착잡하게 한다. 정신없이 바쁘게 뭔가를 이루려 살아오다가 계절의 변화속에서는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유행시킨 것은 삼순이, 삼식이 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미카엘 엔더가 지은 '모모'라는 책도 포함된다. 1970년대 초반에 초판된 이 책은 당시에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우리 나라의 어느 남자 가수는 '모모'라는 노래를 불러 인기를 얻기도 했었다. 중고생 필독서로 꾸준히 읽혀오던 이 책이 드라마를 계기로 학생뿐 아니라 일반 성인에게도 많이 읽혀졌다고 한다.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에 모모라는 정체불명의 소녀가 나타난다. 고아인 모모를 마을 사람들이 돌보아주며 남의 말을 아주 잘 들어주는 모모에게 사람들은 모여든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넉넉했고 따뜻했고 여유로웠다. 그러던 중 회색신사라는 시간 도둑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기 시작한다. “시간은 귀중한 것이다. 절대 빼앗기지 말라!”, “시간은 돈과 같다. 그러니 절약하라!”라는 구호에 맞춰 마을 사람들은 효율이라는 걸 내세우며 모든 것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계획하며 살게 됐다. 하지만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고 마음은 급해졌다. 마침내 모모는 회색신사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에게 시간을 되돌려준다. 그들은 예전처럼 한 순간 한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어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시간 도둑인 회색신사는 뭐가 그리 급한지 시간을 아끼고 쪼개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나의 마음속에 턱하니 버티고 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진 세상이다. 고속철도가 생겼지만 더 바쁘고 시간은 더 없어졌다. 생활비를 버는 법을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었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한 시대이다.

가을이 오고있다. 서럽도록 아름다운 단풍과 낙엽이 그리워진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들에게 가을은 땅도 보고 위도 보고 옆도 보라고 손짓할 것이다. 특히나 비오는 가을 날 우산 쓰고 촉촉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뒹구는 낙엽을 밟고 천천히 걸으면 누구나 가을이 애절하게 호소하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사형집행을 5분 앞둔 한 사형수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사형대에 묶여있었다.

그는 이제 5분밖에 남지않은 시간을 어디에다 쓸까 생각해보았다. 옆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2분, 오늘까지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보 데 2분, 그리고 남은 1분은 자연을 한번 둘러보는 데 쓰기로 했다. 그는 옆의 두 사람과 최후의 키스를 나누고는 조금만 더 살고싶다는 욕망과 함께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바로 그 때 한 병사가 나타나 황제의 특사로 사형집행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살아난다. 그는  바로 28세의 나이로 총살 직전에서 살아난 러시아 최고의 문호인 도스토에프스키였다. 농노제의 폐지, 검열제도의 철폐, 재판 제도의 개혁 등을 요구하는 사회주의 서클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사형이 언도됐으나 황제의 특사에 의해 감형되어 시베리아에 유배된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귀중한 시간 중 1분을 자연을 돌아보는데 썼다.

사람들이 자연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영혼은 순수해지고 행복은 커질 것이다. 특히나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은 속절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내면의 기쁨을 맛보는데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사색과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런 자연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지금도 고로 제철소 문제로 뜨겁게 논의되고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가을의 그 위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