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군장애인복지회관내 장애아동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예율이. 언어와 작업치료도 병행해야 하는데 그런 시설이 없어 서산과 경기도 분당을 오가고 있다.
예율이는 올해 여섯살 난 여자아이다. 감정이 풍부해 한번 보았을 뿐인 사람이라도 다시 만나면 “많이많이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귀여운 꼬마다.
“감정표현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종종 힘들다”고 엄마 박현득(31, 당진읍 원당리)씨가 말할 정도로 활달한 성격을 갖고 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가 좀 작고 한쪽 눈이 작은 것만 빼고는 얼핏 보아서는 예율이가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른다.
그러나 예율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우리나라에서도 열명 남짓에 불과하다는 ‘주버트 증후군’을 앓고 있다. 선천적인 뇌발달 장애로 목과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호흡이 곤란한 무호흡증과 눈꺼풀이 덮여서 잘 안보이는 안검하수증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다. 예율이는 지금 잘 걷지 못하고 간신히 의사표현은 하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예율이의 어릴적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지금 예율이의 상태는 가히 기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외부자극에 아무런 반응이 없이 누운채로 침만 흘리던 예율이가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목과 허리를 가누어 앉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예율이의 의지말고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네 살 위인 언니 예인이의 인내와 가슴앓이의 세월이 있었다.
“예율이가 태어난지 20개월쯤 되던 때였을거예요. 예율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할뿐더러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병원벤치에 앉아 6시간을 울었어요. 어떻게 해야하나 정말로 막막했죠. 그러다 내가 예율이를 포기하면 세상사람 모두가 포기할 것이다, 내가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김밥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예율이가 엄마와 의사소통은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날 이후 엄마는 듣지도 못하는 예율이에게 하루 30권씩 책을 읽어주었다. 예율이에게 그날그날 있었던 사연을 수다스럽게 말해주기도 했다. 끊임없이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그렇게 2년정도 흘렀을까. 예율이가 마침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딸랑이를 흔들어 주었더니 소리 나는 곳으로 얼굴을 돌리더라는 것. 그리고 3살때부터 유아교육프로그램인 ‘아기나라’를 했다. 1년 뒤에 예율이는 선생님이 오시면 반기는 동작과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인고의 세월을 한 줄 글로 표현한다는 게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예율이 엄마가 그 세월을 견뎌것 수 있었던 힘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돌아보는 일’이었던 것 같다.
“병원24시나 인간극장 같은 프로를 보면 우리 예율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보다 훨씬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힘을 얻었어요. 단지 예율이에게 미안한 것이 있다면 좀 더 일찍 큰 병원에 가지 못해 뒤늦게 병명을 알게 됐다는 것이에요.”
그랬다. 예율이는 태어나서 두돌이 거의 다 될 무렵까지 어딘가 느낌이 이상했다는 엄마 박씨의 예감말고는 그 누구도 예율이가 그런 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예율이의 병명을 알게 된 가족의 충격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특히 막내딸을 유난히 예뻐하던 아빠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언니 예인이는 아픈 동생탓에 나이보다 훨씬 어른이 되었다.
예인이는 ‘니 동생은 왜 눈이 짝짝이니?’ ‘왜 걷지도 못하니?’라는 친구들의 물음에 어떻게 답을 할지 몰라 냉가슴을 앓으면서도 한번도 엄마에게 내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엄마의 보살핌이 많이 필요할 때인데 예율이에게 신경쓰느라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하죠. 예인이가 동생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얼핏 보일때마다 예율이는 나쁜게 아니고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를뿐이라고, 곧 나아질거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엄마는 예율이를 일찌감치 세상밖으로 내어 놓았다. 감추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이 예율이의 상태에 대해 감추려 할 경우 다른 사람들이 예율이를 대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엄마는 일주일 내내 예율이와 씨름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재활치료를 받으러 서산의 복지회관과 경기도 분당에 있는 병원을 오간다. 화요일과 목요일엔 당진군 장애인복지회관에 들러 물리치료를 받는다. 다행히 운전면허를 따서 1년전부터 직접 차를 몰고 다니게 됐지만 그 전엔 예율이를 업고 버스를 타고 이 과정들을 해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포기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단지 어려운건 경제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아 욕심껏 예율이에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라고 한다. 예율이가 커 갈수록 그 편견들과 부딪혀야 하는 건 이제 예율이 혼자의 몫이 될 것이기에 엄마는 더욱 조바심이 난다.
희귀질환이다보니 보험혜택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어 예율이의 치료를 위해 들이는 비용이 수월치 않다. 게다가 당진은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조차도 열악한 실정이라 한곳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이곳 저곳으로 원정을 다녀야만 한다.
“좀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돈이 없어서 장기이식을 못 받는다거나 얼마든지 상태가 나아질수 있는 장애인들이 어둠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일이 없는 그런 사회요. 장애는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누구한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예율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저도 위만 바라보고 살았을거예요.”
예율이 덕분에 ‘아래’를 보게됐다는 엄마는 예율이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돌보는 이 없는 병든 노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하나같이 부모들 자신도 몸이 성하지 않다고 한다. 오랜시간 아이를 돌보다 보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예율이 엄마도 마찬가지다. 서른한살의 나이에 갑상선과 신장질환을 앓고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 예율이는 고통과 동시에 기쁨의 원천이기도 하다.
지난 봄 어느날, 차를 타고 가던 중 예율이가 창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문을 열어주었더니 ‘엄마, 바람이 불어, 새소리가 들려’ 라며 좋아하던 예율이를 보고 너무나 기뻤다. 엄마의 말을 따라하기만 했던 예율이가 자신이 느낀 바를 스스로 표현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율이가 처음으로 세상과, 자연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예율이는 이제 엄마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도 알게됐다. 늘 자신을 안고 다니는 엄마에게 요즘 예율이가 자주 하는 말은 ‘엄마 힘드니까 유모차 태워줘’다.
예율이와 엄마는 이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친구인 엄마와 함께 예율이는 이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세상이 예율이 같은 장애아들에게 좀 더 따뜻하고 열려있길 바라면서...
▒ 희귀병 앓는 예율이와 엄마 이야기
예율이를 위한 엄마의 선택 ‘희망’
국내 환자 10여명 불과한 ‘주버트 증후군’ 뒤늦게 알게 돼
듣지도 보지도 못할거라는 진단에 “하루 책 30권씩 읽어주며 반응 기다렸어요”
당진군장애인복지회관내 장애아동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예율이. 언어와 작업치료도 병행해야 하는데 그런 시설이 없어 서산과 경기도 분당을 오가고 있다.
예율이는 올해 여섯살 난 여자아이다. 감정이 풍부해 한번 보았을 뿐인 사람이라도 다시 만나면 “많이많이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귀여운 꼬마다.
“감정표현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종종 힘들다”고 엄마 박현득(31, 당진읍 원당리)씨가 말할 정도로 활달한 성격을 갖고 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가 좀 작고 한쪽 눈이 작은 것만 빼고는 얼핏 보아서는 예율이가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른다.
그러나 예율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우리나라에서도 열명 남짓에 불과하다는 ‘주버트 증후군’을 앓고 있다. 선천적인 뇌발달 장애로 목과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호흡이 곤란한 무호흡증과 눈꺼풀이 덮여서 잘 안보이는 안검하수증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다. 예율이는 지금 잘 걷지 못하고 간신히 의사표현은 하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예율이의 어릴적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지금 예율이의 상태는 가히 기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외부자극에 아무런 반응이 없이 누운채로 침만 흘리던 예율이가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목과 허리를 가누어 앉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예율이의 의지말고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네 살 위인 언니 예인이의 인내와 가슴앓이의 세월이 있었다.
“예율이가 태어난지 20개월쯤 되던 때였을거예요. 예율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할뿐더러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병원벤치에 앉아 6시간을 울었어요. 어떻게 해야하나 정말로 막막했죠. 그러다 내가 예율이를 포기하면 세상사람 모두가 포기할 것이다, 내가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김밥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예율이가 엄마와 의사소통은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날 이후 엄마는 듣지도 못하는 예율이에게 하루 30권씩 책을 읽어주었다. 예율이에게 그날그날 있었던 사연을 수다스럽게 말해주기도 했다. 끊임없이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그렇게 2년정도 흘렀을까. 예율이가 마침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딸랑이를 흔들어 주었더니 소리 나는 곳으로 얼굴을 돌리더라는 것. 그리고 3살때부터 유아교육프로그램인 ‘아기나라’를 했다. 1년 뒤에 예율이는 선생님이 오시면 반기는 동작과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인고의 세월을 한 줄 글로 표현한다는 게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예율이 엄마가 그 세월을 견뎌것 수 있었던 힘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돌아보는 일’이었던 것 같다.
“병원24시나 인간극장 같은 프로를 보면 우리 예율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보다 훨씬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힘을 얻었어요. 단지 예율이에게 미안한 것이 있다면 좀 더 일찍 큰 병원에 가지 못해 뒤늦게 병명을 알게 됐다는 것이에요.”
그랬다. 예율이는 태어나서 두돌이 거의 다 될 무렵까지 어딘가 느낌이 이상했다는 엄마 박씨의 예감말고는 그 누구도 예율이가 그런 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예율이의 병명을 알게 된 가족의 충격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특히 막내딸을 유난히 예뻐하던 아빠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언니 예인이는 아픈 동생탓에 나이보다 훨씬 어른이 되었다.
예인이는 ‘니 동생은 왜 눈이 짝짝이니?’ ‘왜 걷지도 못하니?’라는 친구들의 물음에 어떻게 답을 할지 몰라 냉가슴을 앓으면서도 한번도 엄마에게 내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엄마의 보살핌이 많이 필요할 때인데 예율이에게 신경쓰느라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하죠. 예인이가 동생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얼핏 보일때마다 예율이는 나쁜게 아니고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를뿐이라고, 곧 나아질거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엄마는 예율이를 일찌감치 세상밖으로 내어 놓았다. 감추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이 예율이의 상태에 대해 감추려 할 경우 다른 사람들이 예율이를 대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엄마는 일주일 내내 예율이와 씨름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재활치료를 받으러 서산의 복지회관과 경기도 분당에 있는 병원을 오간다. 화요일과 목요일엔 당진군 장애인복지회관에 들러 물리치료를 받는다. 다행히 운전면허를 따서 1년전부터 직접 차를 몰고 다니게 됐지만 그 전엔 예율이를 업고 버스를 타고 이 과정들을 해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포기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단지 어려운건 경제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아 욕심껏 예율이에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라고 한다. 예율이가 커 갈수록 그 편견들과 부딪혀야 하는 건 이제 예율이 혼자의 몫이 될 것이기에 엄마는 더욱 조바심이 난다.
희귀질환이다보니 보험혜택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어 예율이의 치료를 위해 들이는 비용이 수월치 않다. 게다가 당진은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조차도 열악한 실정이라 한곳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이곳 저곳으로 원정을 다녀야만 한다.
“좀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돈이 없어서 장기이식을 못 받는다거나 얼마든지 상태가 나아질수 있는 장애인들이 어둠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일이 없는 그런 사회요. 장애는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누구한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예율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저도 위만 바라보고 살았을거예요.”
예율이 덕분에 ‘아래’를 보게됐다는 엄마는 예율이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돌보는 이 없는 병든 노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하나같이 부모들 자신도 몸이 성하지 않다고 한다. 오랜시간 아이를 돌보다 보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예율이 엄마도 마찬가지다. 서른한살의 나이에 갑상선과 신장질환을 앓고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 예율이는 고통과 동시에 기쁨의 원천이기도 하다.
지난 봄 어느날, 차를 타고 가던 중 예율이가 창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문을 열어주었더니 ‘엄마, 바람이 불어, 새소리가 들려’ 라며 좋아하던 예율이를 보고 너무나 기뻤다. 엄마의 말을 따라하기만 했던 예율이가 자신이 느낀 바를 스스로 표현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율이가 처음으로 세상과, 자연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예율이는 이제 엄마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도 알게됐다. 늘 자신을 안고 다니는 엄마에게 요즘 예율이가 자주 하는 말은 ‘엄마 힘드니까 유모차 태워줘’다.
예율이와 엄마는 이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친구인 엄마와 함께 예율이는 이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세상이 예율이 같은 장애아들에게 좀 더 따뜻하고 열려있길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