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용돈 만원으로 행복하고 사람답게 살기

가장 작은 공간, 아주 특별한 삶

0.6평짜리 도장집에서 11년째

김중환씨

당진읍 터미널 근처에 오래된 도장집이 하나 있다. 생긴 지는 한 18년 되었다 하고 그 사이에 주인은 한 번 바뀌었다 한다.

이 도장집의 두 번째 주인 김중환(40세)씨는 11년째 이곳에서 도장 파는 일을 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당진지부 건물 벽과 양지다방 사이에 있는 조그만 도장가게. 이곳에는 수많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이 있다.

주인 김씨의 일터는 통틀어봐야 0.6평. 작업대와 작업할 때 앉는 의자, 그리고 등받이 없는 고객용 의자 하나로 이 공간은 꽉 찬다. 다닥 다닥 붙어있는 이 세간들 말고도 벽에는 활자판과 도장 샘플, 도장 새기는 데 필요한 재료들로 빽빽하다. 그러나 워낙 작은 것들이기 때문에 벽면의 부피는 이 작은 공간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 정도로 알맞다.

작은 것은 이 공간만이 아니다. 김씨의 도장 파는 작업대는 아마도 가장 작은 작업대가 아닌가 싶다. 사방 8㎝×10㎝의 손바닥보다 작은 도장 작업도구는 도장집에 가본 사람은 누구나 기억함직한 작은 목각도구다. 이 공간에 있는 것은 모두 작다. 사람 김중환씨를 빼고는.

그러나 이 볼품없어 보이는 도장집은 김씨와 김씨 가족에겐 더없이 소중하고 고마운 일터다. 11년전 안면도 깡촌에서 도심으로 나온다고 나온 당진읍내. 농사짓는 기술 말고는 달리 기술이라곤 없었던 김씨에게 뜻밖의 기회를 제공한 사람은 전에 이 자리에서 도장일을 하던 분이었다. 그분은 외국선교사로 나가면서 김씨에게 도장기술과 이 자리를 물려주고 떠났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 자리가 사실은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김씨 역시 그저 평범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평범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부인과 월세 4만원짜리 방 한칸이 전부였던 김씨는 11년간 이 작디 작은 공간에서 개미처럼 일해 올 2월 대덕리에 있는 2층집으로 이사를 했다. 은비, 은별 두 딸과 네식구가 전부지만 언젠가 시골에 사시는 어른들을 모실 계획으로 큰집을 골랐다.

그렇다고 김씨가 알뜰살뜰 저축하는 데만 골몰해 인색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없는 형편에서도 김씨는 늘 ‘나눔’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렇게 몸소 행하며 살았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집안이 어려워 점심을 못먹거나 배우고 싶어도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1년치 비용을 덜컥 내놓기도 했고 겨울이면 교회 노인들을 위해 털신 한 켤레 씩이라도 꼭 선물하고 넘어갔다. 몇 년전부터는 시골어른들을 위해 얼마되지 않는 소득을 뚝 잘라 보내드리고 있다. 도장집에서 아무리 부지런히 일한다고해야 그 소득이 이렇게 여유있게 살아갈 만큼 되지는 못할 텐데도 김씨는 과감하게 이렇게 산다.

김씨는 그것이 감사의 뜻이라고 한다.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밝은 햇빛을 쪼이며 살아가는 데 대한 고마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신이 지금처럼 잘 살아가도록 해준 하늘과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 이웃들과 세상에 대한 고마움. 그런 것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한다. 김씨는 4년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직접 힌트를 얻었다. ‘부모를 위해 쓰는 돈은 하늘이 주신다’는 것이었다. 옳은 일, 선한 일에 쓰는 돈은 반드시 다른 방도로 채워진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자신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선뜻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김씨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보답 또한 톡톡히 받고 있다. 빠듯한 소득에 그렇게 나가는 돈들은 부족함 없이 언제나 필요한 그때 그때 채워지곤 했던 것이다.

지금도 배움을 중단하지 않는 그는 독서를 꽤 많이 하는 편이다. 김씨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지혜의 샘인 ‘성경’이다. 그는 성경을 서른 두 번이나 통독했다고 한다. 그가 아내를 존중하고 자녀를 사랑하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방법들은 모두 거기서 얻은 지혜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그가 아무런 인내와 극기 없이 이런 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는 철저히 극기적인 사람이다. 김씨의 한달 용돈은 1만원이 채 안된다. 자신을 위해서는 술 한잔, 담배 한 대를 아끼는 것이다. 그의 작업실 눈높이에는 “화장터에서는 죽은 사람을 태우지만 담배는 산사람을 태운다”는 글씨가 씌어진 종이가 붙어있다. 자기극기를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 엿보인다. 점심은 아내가 싸주는 도시락으로 해결하는데 늘 넉넉하고 맛깔스럽게 싸주는 아내 덕에 옆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사람들은 드물지 않게 김씨의 도시락을 나눠먹을 기회를 얻곤 한다. 도장을 파주고 계산을 하기 위해 서랍에서 꺼내는 그의 지갑은 가죽이 다 해졌고 안쪽에 댄 헝겊마저 너덜너덜해져 있다. 이 지갑은 15년전 아내가 결혼선물로 해준 것이다.

이렇게 인색해서야 주변 인간관계가 말이 아니겠구나 하는 순간적인 의구심은 정말 섣부른 것이다.

그가 사는 동네는 항상 웃음꽃이 피고 인정이 넘친다. 적어도 한달에 한번 가까운 이웃들은 그의 집에서 잔치 아닌 잔치를 벌인다. 국수를 끓여먹기도 하고 과일을 나눠먹기도 하면서 이웃들은 공동의 일을 상의하고 해결한다. 그가 사는 마을은 항상 공동꽃밭이 있었고 보일러 기사나 수도검침원이 따로 필요없었다. 짬을 내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열심히 배우는 김씨는 동네 보일러 점검원과 수도 점검원이 기꺼이 되어 주었다. 두부만들기의 선수인 아내 윤미숙(39세)씨는 직접 콩을 사다 불려서 손두부를 만들어 가끔씩 이웃에 돌리기도 한다. 도장집에 앉아 있노라면 도장을 파러 왔던 사람들이 그의 구김살 없고 환한 얼굴에 이끌려 어느덧 사는 일의 고달픈 꾸러미들을 풀어놓는다. 이럴 때에도 그는 기꺼이 상담원이 되어준다.

아무리 각박해도 김씨는 한달에 20일 이상을 일하지 않는다. 심장이 좋지않은 아내와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등산과 친지 방문, 독서를 한다.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들과 함께 꾸준히 복지원을 방문하면서 보람있게 지내고 있지만 그에게는 일 못지 않게 이 가정을 돌보고 발전시키는 것과 균형있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의 삶을 아는 사람이라면 균형있는 삶이 무슨 사치스런 소리냐고 말할 수 없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남만큼 가진 것 없는 가운데서도 남보다 노력하고 애씀으로써 남다른 삶을 엮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침 식사시간 전 5분도 김씨 기족에게는 금쪽같은 시간이다. 이 시간에 두딸은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듣고 그날 하루증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들에 대해 조언을 듣는다. 이를테면 어려운 친구를 격려하는 일, 아침을 거르는 선생님의 기운을 돋구는 말 한마디를 할 것 등이다. 아버지가 기울이는 애정만큼 명랑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은 이담에 시집가서 아버지의 훈시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 벌써 서운할 지경이다.

김씨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겸손하다.

“제가 비록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큰 일을 할 사람은 결코 못됩니다. 대신 저는 한 가정을 바르게 가꾸는 일에 저를 바치고 있고 이 역시 대단히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0.6평짜리 작은 공간에서 한달용돈 만원으로 꾸려가는 김씨의 삶에는 이 세상에 있을 법한 덕목들이 풍성하게 넘쳐 보인다. 삶의 가능성이 무한대임을 김씨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김태숙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