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엄마 편찮으신데는 없나요?”
머뭇거리는 아버지의 음성은 전화선을 통해서 불안하게 느껴졌다.
“괜찮다. 코피가 나고 피곤하시다고 지금은 누워 계시는구나.”
수화기를 놓자마다 서로 불안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동생과 언니는 함께 부모님댁으로 가기로 했다. 엄마는 핏기 하나 없는 종이장같은 작은 모습으로 방의 한쪽에 누워계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엄마를 우리집으로 모셔왔다. 토요일인지라 마땅한 병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월요일 서둘러 서울에 있는 경희대 한방병원으로 엄마를 모셨고 한달동안 그 무더운 8월의 병원생활 후에 엄마는 다시 우리곁에 건강한 모습은 아니지만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돌아오셨다. 그것이 바로 작년의 일이었다.
시골로 엄마와 아버지께서 이사를 한 후 작은 텃밭은 우리가족의 신선한 먹거리 창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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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먹거리에는 땀이 있고 사랑이 있다. 가끔 그런 것들이 보내져서 정신없이 바쁘다 버려질때면 미안한 마음에 투정을 부려보기도 한다.
“엄마, 동네에서 사면 얼마 되지도 않은걸 뭐러 힘들게 농사져서 보내세요. 그냥 엄마 아버지께서 드실만큼만 심고 저희들까지는 보내지 마세요.”
그러나 부모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잘 익은 여러가지 곡식과 채소를 모았다가 보내주시니 말이다. 그 작은 텃밭은 가족이 모이는 주말농장이자 화합의 장소이기도 하다. 엄마가 안계신 작년은 딸 셋이 주말마다 가서 고추 수확을 하며 부모님을 생각했고, 배추를 심어보고 자라는 걸 지켜보며 자연의 선물인 수확을 할 때면 모두 하나되어 기뻐하고 상에 오른 김치를 먹으며 자랑스러워했다.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전에는 비가 내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밖에 나갈 때 우산이며 준비물도 많고 지척지척 길에 채이는 빗방울로 걷기 힘들고 옷을 버리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젖은 모습은 쌓여가는 일에 되어 빨래며 청소를 짜증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인데 비올 때 밭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 쉬고 계실 엄마를 생각하면 내리는 비가 반갑다.
비 피해는 생각지 않는 얕은 생각이라 할지 모르지만 다시 아프면 안될 엄마가 계신 딸의 마음 때문이다. 비를 맞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배추는 토요일 여동생과 언니와 함께가서 물을 대고 한포기 한포기 자리를 잡아주며 심은 모종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 모종은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아들이 엄마를 따라 왔다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상자에 심을 때 나무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구멍을 파고 아주 작은 좁쌀만한 씨앗을 넣어 주었던 그 씨가 자라 모종이 되고 밭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손으로 심어서 그럴까? 이 작은 배추들이 자라는 모습이 마치 내 아이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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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모여 밭한자락이 웃음으로 피어날 때 그 안에 가족의 결속력과 사랑 또한 높푸른 하늘만큼이나 커져간다는 것, 함께 할 수 있는 기쁨과 사랑 속에 소중한 추억들이 자라는 배추밭, 이 비를 젖줄삼아 무럭무럭 배추가 자라면 올겨울 배추김치로 다시 식탁위에서 엄마의 사랑과 더불어 함께 만나질 수 있을 것이다.
빨리 글을 끝내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아프신데는 없는지 우리들이 심은 배추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지 또 다음주에 찾아뵐 때 드시고 싶은 것은 없는지... 살면서 소중한 것이 가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의 과거인 부모님, 현재인 우리 가정 그리고 미래가 될 나의 아이, 우리는 이렇게 이어져 살아가면서 편하기 위해 멀리하는 부모님과 자연 속에서의 일들을 해보는 건 어떨까?
작은 텃밭을 만들어 아이들과 키워보면서 꿈도 사랑도 희망도 자라게 하는 건 어떨까? 이 가을에는 가족나들이를 권하고 싶다.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