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당시 유대나라 지배국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서 처형되셨다.
그런데 이 재판이 후세에 길이 남는 잘못된 판결로 유명하다. 죄없는 분에게 사형을 선고하고는 자기는 이 재판결과에 책임이 없다고 대야물에 손을 씻었지만 기독교가 지금도 예배때 암송하는 사도신경에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고 그의 이름을 오명부에 올린다.
유대나라의 종교와 문화에 낯선 이방인 빌라도는 자기의 의사가 아니라 군중들의 처형요구 함성과 여론에 무릎을 꿇어 치욕적 오판을 저지른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
그는 다만 법과 하늘을 향해 부끄럼 없는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로서 꿇어서는 아니될 무릎을 꿇은 것이다.
권력의 눈치와 여론의 향방, 억지부리는 다수의 압력에 스스로 무너지는 무기력한 한 판사의 오판 희생물로 기독교의 십자가는 세상 위에 우뚝 솟아 지금까지 2천년을 버티고 있음이 역사의 아이러니 이기도 하다.
요즘 퇴임한 한 법관의 양심 고백적 퇴임사는 정의에 목마른 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다.
삼성 등 대재벌에 쩔쩔매는 모 정당이나 친일행각과 과거 독재 정권에 아부하면서 명맥을 이어온 수구족벌신문(조선, 동아, 중앙)들이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궁금하다.
또 기독교 종교계의 친일행각 인사들이 언제쯤 양심고백을 하고 회개할지 요원하기만 한데...
그러나 빌라도가 오판으로 무릎을 꿇었던 대상은 사실 따지고 보면 군중들의 함성이라기 보다는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과 자리를 그대로 유지해 보려는 술수에 기인하고 있어 부정,부패,불의 앞에 자기와 생명까지도 내 놓을 수 있는 멋있는 판사가 되기는 아예 처음부터 글렀던것 같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많이 가졌고, 높고 좋은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걸 얻고 이룬 방법이 정당하고 정의로웠는지 검증을 받아야 한다.
만일 잘못된 방법이나 불의하게 얻었다면 각성하고 물러나야 한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용단을 촉구한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개혁이 잘 안되는 법조계, 종교계에 일대 개혁의 토네이도가 불어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