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아직 취약하다. 충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말 뿐인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단체장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지방자치의 방향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다.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단체장의 마인드가 매우 중요하다.

2003년 행정자치부가 예산편성지침을 통해 주민참여예산제도의 도입을 권고한 이후 광주시 북구의 김재균 구청장은 전국 최초로 참여예산제를 실시하고 관련 조례를 제정해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앞서가는 자치단체의 행정 마인드를 통해 지역의 미래를 조망해 보고자 본지는 지난 7일 광주 북구청을 방문해 김재균 구청장을 인터뷰했다. 본지는 이번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국의 모범 자치단체를 탐방해 연재할 예정이다.

자치단체 대상 각종 평가에서 수상

광주시 북구는 지난 10월11일부터 3일간 경남 진주시에서 열린 ‘2005 주민자치센터 박람회’에서 자원봉사와 프로그램 분야 등 4개 분야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전에도 북구는 지난 2004년 주민자치센터 국제박람회에도 지원행정분야 최우수상을 비롯해 일곡동과 삼각동, 오치1동 주민자치센터가 우수상과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광주시 북구는 9월29일 고품질 행정서비스로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주관한 2005년 국가생산성 혁신대회에서 고객만족부문 대상을 받았다. ‘주민자치’와 ‘문화북구’라는 비전을 정해 자치와 참여를 통한 구정 운영, 주민중심 지역경영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킨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6월에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개최한 제2회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대전에서 행정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일보와 서울 경제신문이 주최하고 행정자치부, 산업자원부 등이 후원한 이 대회에서 북구는 전국 최초로 주민참여예산제를 운영해 재정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실질적인 주민참여로 주민 의식전환과 행정의 신뢰도를 향상시킨 점이 우수 사례로 꼽혔다.

지난해 12월에는 전국의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사)한국공공자치연구원에서 주최한 제5회 자치행정혁신 전국대회에서 재정경영부문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전국 최초로 예산편성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해 예산편성에 효율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참여에 의한 새로운 재정자치 모델을 제시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6월에는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 주관 우수공약 평가에서 주민참여예산제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국 최초로 참여예산제 도입한 김 구청장

광주시 북구가 전국의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각종 평가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이처럼 자치행정 분야에서 광주시 북구가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재균 북구청장의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과감한 참여행정 마인드가 자리하고 있다.

1952년 광주에서 태어난 김 구청장은 광주살레지오 중·고교를 나와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같은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육군 3사관학교 교수를 지낸 후 주민자치연구소 이사장과 흥사단 광주 전남 평의회 의장 등을 역임한 광주지역의 대표적 NGO 인사 출신이다. 1995년 광주광역시의회 초대의원으로 당선돼 2대 의원 등을 거쳤으며 1998년 광주광역시 북구청장에 당선돼 2002년 재선에 성공, 지금에 이르고 있다.

김 구청장은 화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1997년과 2000년에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하고 1999년·2000년 목우회 공모전에서 특선, 한·미 예술가협회 공모전에서 대회장상을 받았다. 또한 1998년 계간 시대문학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문단에도 등단해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문화와 예술방면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구적 기질도 다분해 2000년에 전남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좥한국민족주의와 지방자치(한마당1990)좦 좥광주의 미래를 생각하며(한마당1990)좦 좥광주의 미래를 생각하며2(한마당1994)좦 좥5·18과 한국정치(한울2000)좦 등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김재균 구청장이 주목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전국 최초로 ‘참여예산제 운영조례’를 제정해 재정민주주의 실현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담당공무원과 의회의 소극적 태도 불구

참여예산제 도입

주민참여예산제는 예산편성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제도로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시에서 1989년 노동자당(PT)이 집권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에 의해 예산을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개발돼 1991년부터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부터 민주노동당과 대전시·순천시 시민단체 등이 조례제정을 요구했으며 2003년 1월 예산감시네트워크 소속 시민단체들이 워크숍을 갖고 주민참여예산조례 제정을 주요사업 목표로 결의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방분권과 자율의 국정원리에 의해 행정자치부도 2003년 7월31일 지방예산편성지침을 통해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의 도입을 권고했다. 그러나 예산편성권과 심의권을 기득권으로 여기는 대부분의 자치단체와 의회가 이를 선선히 받아드릴 리 만무했다. 이전에도 일부 자치단체에서 인터넷을 통해 주민의사를 수렴하기도 했으나 예산편성요구서 등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등 형식적 운영에 그쳤다.

이같은 상황에서 2003년 8월 김재균 북구청장은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전격 도입, 각 부서의 예산요구서와 사업기획안을 인터넷과 보고서를 통해 공개하고 예산참여시민위원회를 구성해 주민의견을 수렴했다. 특히 지난해 3월25일에는 전국 최초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를 제정해 법적·제도적 기틀을 다짐으로써 재정 민주주의 실현과 지방재정 분권의 주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초 김재균 구청장은 2002년부터 주민참여예산제도 도입을 구상하고 있었으나 전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특히 구의회에서는 예산심의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협조적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제 도입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김재균 구청장은 “예산편성권은 자치단체장에게 있지만 심의권은 의회에 있다”며 “참여예산제도는 단체장의 고유권한인 예산편성을 주민들과 공유하겠다는 것으로 심의권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며 설득했다”고 말했다.

결국 김 구청장은 의회를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그 결과 전국 최초의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를 제정할 수 있었다.

예산학교와 시민위원회 운영으로

주민참여 보장

참여예산제도 도입을 위해 북구는 수차에 걸친 내부조직의 토론과 의회 간담회 등을 실시해 이론적 틀을 마련했으며 주민공청회 등을 실시해 공감대를 확산하는데 주력했다. 또한 조직기반 정비를 위해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업무추진의 지속성을 확보했으며 주민예산학교를 운영해 예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도록 했다.

이와 함께 학계와 시민단체, 전문가 등 9명으로 구성된 주민참여예산제 연구회를 운영해 이론적 뒷받침과 함께 내실있는 운영의 틀을 이끌어 냈다.

특히 제도운영의 핵심주체라고 할 수 있는 예산참여시민위원회는 공모제를 원칙으로 해 80명으로 구성했으며 분야별 전문성을 확보하고자 5개 분과를 구성 운영했다. 시민위원회는 예산안에 대한 의견제출, 주민대상 예산설명, 예산정책토론회를 주관해 개최하는 등 주민참여예산제의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전년도 결산 및 차기연도 예산 편성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사전설명회, 사업별 예산설명 및 토론을 벌이는 분야별 토론회, 전체 예산안에 대해 조정하는 총괄토론회를 개최해 시기별로 다양한 주민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주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운영절차와 기준을 규정한 조례 및 규칙은 단순한 아이디어만으로는 제도의 시행에 한계가 있고 형식적으로 운영될 수 있기 때문에 제도운영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정됐다. 또한 북구는 상시적인 주민의견 수렴을 위해 구청 홈페이지에 주민참여예산제를 소개하고 예산요구서와 예산안 등 재정운영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시행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예산편성단계가 기존 5단계에서 10단계로 늘어나게 돼 복잡해진 대신 주민의 사전적 통제가 강화되고 불필요한 낭비적 요소들이 제거되는 등 절차적 민주성과 합리성 면에 크게 기여하게 됐다.

거듭된 교육과 대화, 설득으로 어려움 극복

물론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시행과정에서 많은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새로운 제도시행에 따른 업무가중과 자체재원 부족으로 다양한 주민의견을 반영할 수 없다는 조직내부의 부정적 시각이 있었으나 김재균 구청장의 강력한 추진의지가 뒷받침되면서 공무원 마인드 전환 교육 등을 실시해 추진동력을 확보했다.

김재균 구청장은 “참여예산제를 실시하게 되면 예산편성 과정이 5단계에서 10단계로 늘어나 담당공무원들이 힘들고 번잡스럽다고 느낄 수 있으며 실제로 추진과정에서 일부 공무원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인드 전환교육을 여러 차례 실시한 결과 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예산심의권을 침해한다는 의회의 오해와 우려도 큰 어려움이었다.

김재균 구청장은 의회 간담회를 통해 조례제정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예산심의권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을 조례에 명문화해 의회와의 갈등을 풀어나갔다.

시민위원들에 대해 전문성의 부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으나 주민예산학교를 운영해 예산에 대한 이론과 실무교육을 실시, 전문성 부족을 극복해 나갔다.

참여범위에 대해 북구는 각 부서에서 요구한 자료를 전부 공개하고 의견수렴은 재량성이 있는 자체 세입과 자체 사업으로 한정했다.

학계와 시민단체 등 민간부분 참여 보장

광주 북구청이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하기까지는 학계와 시민단체 등 민간부문의 참여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북구는 참여예산제도의 도입을 주장해 온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며 운영과정과 방법, 지난해 제정된 조례까지 시민단체가 제시한 내용을 대부분 수용했다. 또한 운영과정에서 연구회 등에 시민단체의 참여를 보장했고 예산학교 등 일부 프로그램은 시민단체에게 운영을 맡기기도 했다.

참여자치21의 박광우 사무처장은 “예산요구서 공개를 놓고 광주광역시와 행정소송까지 가는 등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으나 정부의 재정 민주주의에 대한 로드맵을 북구청장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수용하면서 급진전됐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자치단체와 의회의 예산 편성권과 심의권은 위임된 권리에 불과하다”며 “의회도 의결하기 며칠 전에 편성안을 받고 심의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참여와 토론을 통해 내용적으로 훨씬 풍부한 자료를 갖고 심의할 수 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향후 사업별 예산서 작성,

추경·중기재정계획까지 확대

주민참여예산제의 도입으로 북구청은 난해한 예산서를 알기 쉽게 작성, 공개해 주민의 참여를 확대했으며 관 주도 예산편성의 한계를 극복해 새로운 재정자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었다.

시민위원회가 지난해 주관한 세 차례의 예산정책토론회와 인터넷, 주민과의 대화에서 모두 83건의 의견이 접수됐으며 이중 65건이 반영됐다.

이 같은 성과는 전국적으로도 인정을 받아 지방재정법 개정의 계기가 됐으며 행정자치부 예산편성 매뉴얼에 북구의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전국 최초의 조례제정으로 타 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이 이어지고 있으며 행정자치부의 지방행정혁신의 성공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북구는 향후 발전방향으로 시민위원회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분과위원회의 기능을 활성화, 특정 개인이나 단체 등에 악용되지 않도록 역기능에 대한 해소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또한 누구나 보기 쉽고 알기 쉬운 예산설명서 작성기법을 지속적으로 연구 보완해 보다 많은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주민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주민이 보다 알기 쉽도록 사업별 예산서 작성을 추진하는 한편 예산참여시민위원회의 참여범위를 특별회계와 기금, 추가경정예산까지 확대하고 중기재정계획 수립시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김재균 구청장은 “처음 시작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설득하면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