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마당엔 개 3마리가 묶여 산다.

진돗개 잡종으로 보이는 ‘똘이’와 서양 애완견 피가 섞인 것으로 보이는 ‘보리’ 그리고 스피츠 잡종으로도 보이고 풍산개의 혈통을 받은 것 같기도 한 ‘하돌이’다.

개성이 뚜렷한 삼견삼색(三犬三色)

똘이란 놈은 의젓하고 믿음직스럽다. 제법 양반 티를 낸다. 먹이를 줘도 금방 대들지 않는다. 뜸을 들이다가 먹는다. 성급하게 대들지를 않는다. 기다림의 지혜를 아는 놈 같다. 웬만한 일에는 잘 짖지도 않는다. 그러나 낯선 사람이 오거나 다른 개가 나타나는 등 꼭 필요할 때에만 묵직한 소리로 짖는다. 위엄이 실린다. 그놈은 참 믿음직스럽다.

보리란 놈은 영락없는 천상이다. 눈에는 항상 눈곱이 낀 것처럼 보인다. 항상 짖어대며 껑충껑충 뛴다. 먹이를 주면 마구잡이로 허겁지겁 먹어댄다. 전 주인한테서 제대로 못 얻어먹고 구박 꽤나 받으며 자란 놈 같다. 눈치 보기에 이골이 난 것 같다. ‘앉아!’라고 소리치면 금방 납작 엎드린다. 온 몸으로 절대복종의 자세를 갖춘다.

하돌이란 놈은 무지 약다. 재롱이 보통이 아니다. 옆에 있는 다른 놈을 쓰다듬으면 난리가 난다. 깨갱거리며 왜 나는 안 만져주느냐고 앙탈이다. 같이 있다가 자리를 뜨면 또 깨갱거린다. 왜 나를 두고 가느냐고 소리 지르는 표정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놈은 아무데나 똥을 싸고 뭉개고 근처에만 가면 뛰어 오르고 난리다. 내 바지를 온통 똥 묻은 흙으로 범벅을 만들어 버린다. 근처에 가려면 옷부터 갈아입어야 한다. 그래도 미워할 수가 없다. 놈들이 나를 무지 좋아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똘이만 길렀는데 혼자 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여 장에 가서 3만원 주고 보리와 하돌이를 사왔다. 세 놈이 나란히 앉아 있거나 서로 뒹굴고 장난치는 모습이 참 귀엽다.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다름의 어울림과 조화의 미(美)

십인십색(十人十色)이란 말도 있지만 개 세 마리의 각기 다른 삼견삼색(三犬三色)의 모습을 지켜보면 참 재미있다. 생김새와 크기도 각기 다르지만 짖는 표정도 다르고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도 각기 다르다. 먹이를 기다리는 표정도 다르고 먹을 때도 개성이 뚜렷하다. 줄에 묶여 있고 주는 먹이 밖에 먹지 못하지만 제한된 공간에서나마 각기 다른 개 세 마리가 어울려 노는 모습에서 어떤 조화를 느낀다. 그리고 어울림이 아름답다는 생각도 한다. 다른 것들의 어울림과 조화가 더 귀하게 보인다. 같은 종류의 명견 세 마리를 기르는 것보다는 멋대로 생긴 잡종견 세 마리를 기르는 재미가 더 큰 것 같다. 그리고 패를 갈라 자기 생각만 옳다고 외쳐대는 요즘 세상 사람들 생각도 해본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

시간이 나면 나는 개 3마리를 지켜보곤 한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끈으로 묶여 있는 놈들이 우리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좀 나을지 모르지만 자유를 만끽하게 모두 풀어주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낀다. 제일 어린 하돌이만이라도 풀어주고 싶은데 아내가 절대 반대다. 마당 앞에 심어 놓은 무, 배추 몇 포기와 마늘밭을 파헤치면 큰일이라는 주장이다.

놈들이 금지 구역만 알아서 피해준다면 더 없이 고마울 것 같다. 그리고 도둑을 지키는 데도 훨씬 효율적일 테고 놈들은 또 얼마나 신이 날 것인가?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것이 아쉽고 뜻이 통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할 일과 삼갈 일을 가리지 못하고 의사소통을 하지 못해서 억압을 받는 것이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묶여 사는 ‘개’팔자는 누구의 탓일까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오가는 정

요즘은 늦잠을 자고 싶어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 시간만 되면 놈들이 아침밥을 달라고 짖어대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막옷을 챙겨 입고 개똥을 치우는 일이다.

그리고 먹이를 주고 물을 떠다 준다. 이런 일이 하루에 한번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때로는 밥그릇과 물그릇도 씻어주어야 한다. 귀찮기는 하지만 놈들이 나를 무지 좋아하니 나도 정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따르고 정을 주면 사랑하게 되는 것은 개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날씨가 추워지면 바람막이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가 요즘 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