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아.. 20대였으니까 젊었을 때군. 내가 젊었을 때는 영화배우 꿈을 꿨었지요. 그래서 충무로에 가서 영화수업을 받았지. 영화수업이라기보단 내가 얼굴이 안되서 배우보다는 연출 쪽에서 일하며 배웠는데 그러다 이발기술을 배우게 됐고 충무로에서 이발소를 내고 일했었어요.”

면천 터미널이발소의 방철남(67)씨의 이야기다. 이제 당진에 내려온 지 11년째라는 방씨. 그의 고향은 원래 이북의 개성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영화배우의 꿈을 갖고 충무로에 몸담았다. 그때가 1970년. 영화출연을 원했지만 단 한편에도 그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충무로의 한 이발사 밑에서 수업을 받고 이발기술을 전수받고 이발소를 열었다. 그의 충무로 생활은 1986년까지 이어졌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효자동 이발사’. 이 영화는 효자동에 살던 한 이발사가 박정희 대통령의 전속 이발사가 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1970년대의 서슬 퍼렇던 시대를 그려내서 주목을 받았던 이 영화. 방씨는 “그 영화는 사실의 일부분이었을 뿐 그 당시에는 그보다 훨씬 심했다”고 말했다.

“내가 그 유지광이 머리도 깎았어요. 당시엔 조금만 잘못 깎아도 초죽음이 되도록 얻어맞았지. 내가 이발기술 배우는 과정에서 무척 많이 맞았어. 영화배우들은 오죽하겠어? 면도하다가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난 그날로 죽은 목숨이었지요.”

“김희라가 이름을 한참 날리고 있을 때도 우리 이발소에 자주 왔었지요. 배우 조춘이 지금은 대머리지만 난 그 사람이 머리를 길렀을 때를 기억해요. 내가 이발해줬거든.”

16년간 충무로에 몸담으며 유명한 영화배우들은 거의 다 자기 손을 거쳐갔다는 방씨. 그는 자신의 이발기술이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만큼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당진에 내려온 것이 지난 1995년이었다. 당진에 뿌리를 둔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인근 예산이나 홍성에 단골손님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는 멀리 대구에서까지 자신을 찾아올 정도라고.

“내 삶의 좌우명? 음... 난 신앙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당진에 내려온 계기도 신앙이었고, 충무로에서의 방탕했던 생활을 접게 만든 것도 신앙의 힘이었지요. 그 당시에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여겼지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방씨는 30여년 동안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는 70세까지 이발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도 하루에 10명씩 그의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70세가 넘었을 때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하다. 여느 누구 못지 않게 치열한 삶을 살아온 방씨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