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오늘도 아침일찍 머리에 분을 바르고 짐을 챙겨 방문을 나섰다. 현관문밖으로 나가려는 어머니를 며느리 김씨가 잡아세운다. 뜻을 이루지 못한 어머니는 현관문 앞에 있는 거울을 마주보고 앉아 무언가를 한참 중얼거린다. 그리고 거실에 들어와 또 한참동안 베란다 밖을 넋놓고 바라보신다.

최근 치매증세가 심해진 어머니는 이 집에 이사온 지 석달이 다 지나건만 아직도 자기 방을 못찾고 헤매신다. 불과 3초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밤에는 집안을 이리저리 배회를 한다. 아들의 이름은 물론 자녀가 몇 명인지 모르고 손주를 자신이 낳은 자식으로 안다. 올해 예순일곱의 어머니는 자신의 나이를 62살로 기억한다. 그때만해도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62세 이후 어머니의 삶의 시계는 멈추었다. 오로지 과거로만, 과거로만 되돌아 갈 뿐이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간 기억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10살 즈음에서 다시 멈춘다. 그 기억 속엔 억울하게 학살당한 오빠가 있다. 어머니는 과거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일만을 기억할 뿐이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사실을 자식들이 알게 된 건 환갑잔치를 끝낸 직후였다. 기념으로 자식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어머니는 금방 다녀온 여행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서른일곱에 남편을 백혈병으로 잃은 어머니는 여인숙을 운영하면서 근근히 3남매를 키웠다. 자식들 모두 장성해 분가를 하게 되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았다. 그리고 그 즈음에 자궁수술까지 받았다. 어머니의 상태는 치매중기에서 말기로 서서히 진행되는 상황이다. 혼자서 옷을 입지 못하고 샤워기 물도 틀지 못한다. 간혹 쓰레기를 손주에게 먹이기도 하고 손주를 업고 무작정 집을 나가 온동네를 찾아 헤맨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어머니를 4년째 모시고 사는 며느리 김씨의 말이다.

김씨는 올해 서른 여섯의 젊은 주부다. 서른이 넘어 결혼한 탓에 중학교 교사인 남편과의 사이에 4살난 딸과 이제 겨우 21개월 된 아들이 있다. 치매어머니를 모신건 시집을 온 그날부터. 남편이 외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억력 장애로만 알았던 어머니는 실제 시집와서 겪어보니 심각한 치매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몸은 아직 청춘인데 기억력은 완전히 죽어버린 치매의 유형중에서도 최악의 유형이었다.

이 병의 실체를 모르고 시어머니의 수발을 맡게 된 김씨는 자기몸이 힘든 것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지만 어머니의 상태가 어린 자신의 아이의 성장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절망에 빠졌다. 오리를 기차라고 우기는 어머니, 내려달라고 보채도 끝까지 아이를 안고있는 어머니, 아이에게 할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전혀 해주지 않는 존재였고 늘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함으로써 불안감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정신불안증을 갖게 된 큰 아이는 2년간 미술치료를 받아야 했다.

시설입소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국의 치매노인 요양 시설이란 시설은 거의 모두 둘러보았다. 그러나 한달에 150만원 이상을 줘야하는 요양시설에 어머니를 맡긴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게다가 위아래 시누이들도 책임을 나눠 맡으려 하지 않았다. 비용이 저렴한 공립시설들을 알아보았으나 충남엔 단 한곳 뿐이었고 그나마 저소득 노인들에게 우선권이 있었다. 일반인은 정원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에만 입소가 허락되었다. 보건소에서 낮 동안만 치매노인을 돌봐주는 주간보호시설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차량운행도 안돼고 시간과 운영날짜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이곳에 어머니를 맡기고 직장에 나간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병, 직접 모셔보지 않은 이상 형제들로부터 조차도 이해도 배려도 받지 못하는 병, 짜증과 죄의식, 자기연민과 보상심리 사이에서 번민하다가 결국 자신마저 황폐해지는 병. 치매환자를 모신다는 건 ‘형벌’이나 다름없는 고통이다. 김씨는 절규하듯 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할지 까마득해요. 어머니는 머지않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실 겁니다. 내 젊은날도 한 순간인데.. 힘들다보니 남편을 잡게 됩니다. 아무말도 못하는 남편은 남편대로 홧병에 걸릴 지경이구요. 형제간 왕래도 뜸해졌고 친구들도 찾아오지 않아요. 사회로부터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치매는 더 이상 한 가족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제발 가까운 곳에 우리같은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치매노인보호센터 같은 것이 하루속히 들어섰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