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용 공개를 하지 않으므로 한·미 FTA 1차 협상의 결과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제한적으로 알려진 몇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 정부가 지금 정확히 미국식 FTA, 아니 미국식 경제통합으로 가고 있음을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추진함은 물론, 국경 간 거래, 넓은 의미의 투자 개념, 이행의무 부과 금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등 미국식 FTA의 핵심요소들에 대하여 대부분 합의해준 것으로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 합의사항들은 우리 경제에 약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독이 될 만한 것들이다. 국경 간 거래는 고용창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도 없다. 미국의 금융 및 서비스 기업들은 국경 건너편에서 우리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이행의무 부과 금지 조항 역시 투자 확대에 의한 고용창출, 기술전수, 국산품 소비 증대 등을 어둡게 한다. 해외투자 유치의 실익이 의문시되는 대목이다.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이다. 이 제도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처음으로 등장한 순수 미국식 제도이다. 조약 당사자를 국가로 보는 정통 국제법의 입장에서 보면 불법적 제도이다. FTA란 국가 간 협정이며 따라서 민간인인 투자자가 현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게다가 국내에서 발생하는 법적 분규에 대한 관할권은 당연히 국내 법원에 있음에도 투자자가 직접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나 세계은행의 국제투자분쟁처리기구(ICSID) 등 제3의 기관에 유치국 정부를 제소하는 것은 위헌적 행위에 해당한다. 우리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우리도 가입하고 있는 ICSID 협약에 규정돼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협약은 제42조 3항에서 협약 체결국의 동의가 없으면 ICSID의 관할권이 발생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치국 국내법에 의해 먼저 구제 절차가 진행되고, 그것으로 미진한 경우 관련 당사국 정부가 합의하면 그때 비로소 ICSID의 중재 기능이 가동한다는 것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한·미 FTA에 들어가면 미국의 개인 투자자나 기업은 (심지어 투기꾼들조차) 한국의 규제나 공공정책 등이 자신들의 투자 이익을 침해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NAFTA 체결 이후의 멕시코와 캐나다 정부가 그런 것과 같이 우리 정부의 정책 자율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환경, 노동, 건강, 삶의 질 등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공익성 정책들이 미국의 민간 투자자들에 의해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주권 침해의 문제이며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 그것도 제도와 공공정책의 변화까지 요구하는 미국식 FTA는 한마디로 경제통합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러한 요구까지 수용하려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정말 51번째 주로 들어가길 원하는 것인가? FTA를 하려면 EU식으로 갈 일이다. 우리 사정에 맞는 맞춤형 FTA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도 우리식의 FTA를 만들겠다는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당장 그것이 어렵다면 역내 국가들과의 공동 노력을 통해 ‘동아시아식 FTA’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여정부여, 우리들의 참여 없이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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