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 꼭 삼디기 같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얼굴은 늘 세수를 안 한 것처럼 땟자국이 꼬질꼬질하고 철 지난 옷을 입고 학업 부진아인 그 아이를 무슨 벌레 보듯 친구들은 피해 다녔지요.

아이들 중 누구라도 그 아이에게 말을 걸거나 받아주면 그 아이마저 따돌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너희들 친구에게 그러면 안 되잖니?” 라는 충고 따위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그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무언가가 마음속에 들어앉기를 바라면서 내내 삼디기가 생각났습니다.

올해 아홉 살이고 초등학교 2학년인 삼디기의 원래 이름은 삼덕입니다. 어려서 아빠를 잃고 돈 벌러 나간 엄마는 소식이 끊긴 채 할머니와 단 둘이서 충청도 산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지요.

2학년이 되었는데도 글을 깨우치지 못한 삼디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고 공부시간에도 장난만 쳐서 선생님께 늘상 야단을 맞습니다.

그러다가 새로 전학 온 씩씩한 촌뜨기 연보라가 아무도 같이 앉기 싫어하는 삼디기 옆에 앉게 되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해요.

연보라는 전학 온 첫날부터 자기를 놀리는 아이들을 꿋꿋하게 대하고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삼디기를 위로해 주고 도움을 줍니다.

삼디기에게 학급문고에 있는 동화책을 읽어주고 받아쓰기 공부를 도와주며 삼디기 눈높이에서 가르치고 격려해 주는 속에서 삼디기는 달라져 갑니다.

까막눈 삼디기를 만난 아이들은 교실에서 소외되는 친구를 한번쯤은 생각하게 되겠지요.

그 어떤 교훈적인 충고로 안 되는 아름다운 깨달음 하나 마음에서 싹 트일 거라 믿어집니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삼디기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모두가 싫어하는 삼디기를 연보라는 어떤 마음으로 도와주었을까?

만일 연보라가 삼디기 반으로 오지 않았다면?

네가 삼디기라면 친구들이 어떻게 대해 주기를 바랄까?

네가 보라라면 어떤 친구가 되어 줬을까?

책을 읽고 난 후 책 속 인물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일은 강요된 독서지도를 경계하는 선에서 느낌을 되새기는 과정입니다.

“이 아이는 착하지?, 이 아이처럼 행동해야 바른 아이란다.” 라는 직선적인 물음은 전혀 공감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직접적인 훈화보다는 아이의 눈높이로 느끼고 보면서 엄마의 솔직한 느낌을 나누는 대화가 훨씬 마음을 움직입니다.

아이와 함께 삼디기와 연보라에게 쪽지 편지를 써서 서로 바꿔보기, 삼디기의 입장과 놀리는 친구의 입장을 역할극으로 해보는 것도 독후활동에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이 까막눈 삼디기와 보라를 만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 사귀는 일,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을 반듯하게 세워가는 모습이 그려지지요.

아이들이 좋은 독서환경에서 올곧게 성장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능력 제일주의 사회, 내가 제일 소중하고 인정받으려는 의식이 팽배한 현실에서 자기보다 못 가진 사람을 배려하고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가도록 그 토양을 만들어 가는 일은 우리 어른들의 소임이라 하겠습니다.

(♠독서지도사 김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