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구호도 부족하여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고 외치면서 둘도 많으니 하나만 낳자던 때가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다. 어느새 우리나라의 출산률은 세계 최하위로 떨어졌고 따라서 인구감소를 크게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시에서는 부부가 맞벌이 하느라고 애기 낳기를 꺼리고 농촌에는 노인들만 거주하니 애기울음 소리 들을 일이 없다. 이 세상에 안온한 가정에서 예쁘게 자라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것만큼 보람있고 재미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온 종일 일만 하고 정작 마음 둘 데 없으니 젊은이들이 거리로만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닐른지.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동안은 월드컵 응원으로 밤을 지새우고, 지나쳐 국민적 이해를 구하지 못할 정도의 투쟁적인 노동운동에 적극 가담해서 텅 빈, 그래서 허전한 마음을 위로 받으려 하는 일면이 있지는 않은지 의구심마저 든다.

응원열기를 냉소하거나 생존권적 차원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참여하는 노동운동의 이념적 진실성을 가벼이 여길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삭막한 도시에서 그리고 시간마저 흐르기를 멈춘 듯한 시골에서 현대인이 안정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해 본 소리다. 농촌의 인구가 줄고 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들도 차례로 문을 닫아야 하니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을 잃어버린 셈인데 마음의 고향이랄 수 있는 가정마저 애기울음 소리 그치고 침묵 아니면 허무를 노래하고 있으니 어찌 비극이 아니겠는가?

애기를 낳아 기르고 교육시키는 일은 결코 국가의 산업발전이나 노동력 공급 차원만의 문제일 수 없다.

세끼 밥 먹기도 어려운 시절에 경제 제일주의를 표방했던 일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이라고 경제를 무시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매사를 물질적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정치사회의 속물적 사고는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문화수준이 높을수록 출산을 기피한다는 일반론이 과연 진실일까? 풍요와 편리 속에서 놀고 즐기는 것이 마치 수준 높은 문화인양 착각하는 물신주의적 사고가 낳은 왜곡된 발상이 아닐지?

출생률을 높이는 방안은 무엇일까? 국민들이 경제적 풍요 못지않게 평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 아니 해도 잘 산다고 시기하거나 가난하다고 하찮게 보는 일 없이 서로 존중해 주면서 열심히 생활문화를 가꾸는 일은 훌륭한 교육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문득 시경(詩經)에 보이는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천하화평즉부인낙자의(天下和平則婦人樂子矣). 천하가 화평해지면 부인들이 자식 두기를 즐거워 한다는 말이다.

요새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까지 겹쳐 부인들이 아기 낳을 생각은커녕 있는 아이의 안전마저 걱정하게 만들고 있으니 심히 곤혹스러운 일이다. 진리는 경제에 있지도 않고 이념에 있지도 않다.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국민들 특히 여성들이 안정된 삶을 영위하도록 보호해 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세계 제1위의 저출산 현상을 지켜보면서 여성을 위한 복지여건을 갖추는 등의 대책을 서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인구문제는 점점 악화일로를 걷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직장)과 사회참여는 이 시대 여성들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과업이지만 출산의 기능은 신이 부여한 특권인 동시에 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사명임을 우리 모두가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