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꼭 높은 산이어야만 명산이 아니다. 산새가 아름답고 다양한 동식물들의 보금자리라면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산이라 할 수 있다. 계곡엔 맑은 물 흐르고 숲 사이로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며 크고 작은 봉우리 너머 파란 하늘 걸치면 이에서 더 바랄 것이 무엇인가?

교육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수백명 아니 수천명의 학생들이 차고 넘치는 학교만이 명문학교는 아닌 듯 하다. 콩나물교실에서 몇몇 우수아가 지배하는 학교문화보다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가슴으로 대화하고 체온으로 말하며 인간적인 만남이 있는 소규모 학교가 어떤 면에서는 명문학교일 수 있다.

최근 학교운영위원장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자주 들른다.

북창초등학교! 한 때는 학생 수가 1500명 가까이 되었던 때도 있었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면서부터 학생수는 점점 줄어 지금은 유치원 원아 포함하여 고작 7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를 드나들 때마다 한결 같이 느끼는 것은 학생 수가 적어도 학교가 텅 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모두가 신바람 나있고 행복한 얼굴들뿐이다. 선생님과 학생의 구분이 없다. 집에서 가족끼리 대화하는 것 같다. 모두가 정겹고 거리감 없고 그야말로 사랑이 넘친다.

수시로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사랑과 정성으로 우리 아이들을 보듬어 안고 가르침 주시는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감사가 흘러나온다.

교육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자녀를 둔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1학년 아이가 밤을 새워 책을 읽는데 주저하지 않고 3학년 아이가 논술을 논한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을 힘들어하지 않고 즐겨 한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배우고 놀았던 이야기와 학교에서 선생님과 재미있게 공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밤이 깊어 다 들어 주지 못하는 날도 있다.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와 싸우고 선생님과의 사이에서 속상하고 뭐 그런 이야기는 언제 들어봤는지조차 모르겠다. 부모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모교 선생님들의 교육! 학교에서는 이를 ‘학생중심 맞춤교육, 모두가 행복한 배움터’라는 지표 아래 실현하고 있다.

그렇다. 소규모 학교만이 명실상부한 학생중심 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 학습수행능력이 부족한 학생,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학생,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더더욱 소규모 학교가 적합하리라고 본다.

가장 덜 가진 학생도 행복할 수 있는 학교문화! 이것이야말로 북창초등학교의 자랑이다. 밤샘독서나 자전거면허시험, 독서캠프, 통학차량 제공, 다자녀 가정 우대장학금 지급, 학습준비물 없이 등교하는 학생, 원어민 영어교육이나 전액무료 방과 후 교육 등의 차별화된 학교경영 전략들은 단지 영세한 학부모들과 소수인 학생들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한 학교경영 패러다임의 작은 변화일 뿐이다. 북창초등학교의 목표는 교육가족 모두의 바로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불행을 참고 견디는 차원에서 벗어나 오늘은 오늘의 여건 속에서 행복하고 그 행복을 배워 더 나아진 내일에는 더 행복하자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처럼 질적으로 우수한 교육이어야만이 우리의 미래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양보다는 질이 우선이다. 농산물도 그렇고 공산품도 그렇듯이 교육도 그렇다.

이제는 자녀들의 특성에 적합한 맞춤교육의 실현을 통해 자기다움을 계발해야만 그들의 앞날을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세상이 온통 변하여 소품종 다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대중 속에 묻어둔 아이들! 단지 학생 수가 많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그 학생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현재 북창초등학교 학생들만 행복할 수는 없다. 적어도 당진 군내 소외되고 불행한 학생들까지는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모교에서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21조 ③항에 의거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이나 가정사정 등으로 교육환경을 바꾸어줄 필요가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전입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모두가 행복한 학교생활과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