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때로 의견이 다르고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이들 부부는 9시 뉴스를 보며 대화하고 같은 일에 함께 울고 웃으며 나를 뛰어넘어 사회구성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같은 가치관과 신념을 가진 동반자로 서로를 깊이 존중하고 있다
▲ 때때로 의견이 다르고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이들 부부는 9시 뉴스를 보며 대화하고 같은 일에 함께 울고 웃으며 나를 뛰어넘어 사회구성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같은 가치관과 신념을 가진 동반자로 서로를 깊이 존중하고 있다

당진환경운동연합이 출발한 것은 당진화력 5·6호기 건설로 당진군민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1999년 창립한 당진환경운동연합은 지역내 환경 현안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다.?

당진환경운동연합에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김병빈 사무국장과 이경희 사무차장.

이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부부에 대해 사람들은 김국장과 이차장으로 잘 알고 있다. 작은 지역사회에서 지난 9년여를 당진환경운동연합에서 상근하며 활동해 왔으니 모두가 이웃이고 친구이다. 지난 세월 당진환경운동연합과 함께한 두 사람의 삶이 곧 환경운동연합이었다.

서울 대도시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부부활동가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당진에서 9년여를 활동해 왔다는 것은 신념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환경운동에 대한 깊은 철학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이 운동에 이토록 열심인 이유가 바로 자녀들을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진정으로 건강한 생태계를 물려주는 것, 상처받지 않고 안전하게 물려주는 것. 이것이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두 사람은 말한다.

두 사람이?냅스壙?환경운동 활동가였던 것은 아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 부부는 당시 시대가 그러했듯이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대학생은 특혜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하게 됐고 단지 다른 동기들 보다 좀 더 적극적이었을 뿐이죠.”

어려서부터 성당에 다녔던 김병빈 사무국장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고1때까지 신부(神父)가 되기 위한 수업까지 받던 김병빈 사무국장에게 뜻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해 겨울, 당시 대학생이던 형이 겨울방학을 맞아 성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자취방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아직은 어리기만 했던 당시 가장 믿고 따랐던 형의 죽음은 김 국장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뜻하지 않았던 형의 죽음으로 어릴적 꿈을 저버려야 했다.

너무나 큰 충격에 대학 입시를 앞둔 고3때까지 방황하다가 1학기 끝 무렵에서야 대학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입시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변 절을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여름방학 때에는 섬에 들어가 공부하며 여름방학 한달 내내 누워서 자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덕일까, 서울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며 지금의 부인 이경희씨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의 소개로 같은 곳에서 활동하던 이경희씨를 만나게 됐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의 양조장집 딸로 태어난 이경희씨는 어려서부터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이씨는 서울에서 할머니와 살면서 학교에 다녔다. 경제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아동복지를 전공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씨는 자연스레 전공과 관련된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들 부부가 공통적으로 생각했던 인생의 동반자는 ‘9시뉴스를 보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고 신문을 보면서 서로 울거나 웃을 수 있는, 같은 사회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한 나를 뛰어 넘어 사회구성원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그리고 몸이 건강한 사람이었다.

서로의 사회적 가치관과 세계관이 통했던 두 사람은 처음 만난 날, 밤새도록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역사의 현장 속에 있었던 이들은 집회 장소에서 만나고 역사적 고뇌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데이트를 한 셈이었다.

자신보다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투철했던 두사람은 1년여의 열애 끝에 12월에 결혼했다. 스물일곱살의 두 동갑네기 활동가는 뜻을 함께하는 친구에서 비로소 동반자가 된 것이다.

“학생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진단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시기였으며 나보다는 사회구성원을 위해 무언가 노력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병빈씨의 말이다. 이경희씨도 여기에 동의한다.

결혼 2년만에 큰 딸 보담이가 태어났다. 결혼 후 출판사에 다니기 시작한 김병빈씨와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에서 일을 하던 이경희씨는 생후 3개월된 보담이를 공동보육시설에 맡기게 된다. 둘다 직장생활을 했지만 굳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공동보육시설에서 사회성을 키우며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당진으로 내려올 결심을 하게 된다. 김병빈씨는 점차 늙어 가는 부모님을 곁에서 모시고 싶었다. 그것이 대학시절 맘고생 하신 두분에 대한 도리인 것 같았다.

김병빈씨는 아동도서점을 운영하며 당진에서 시민운동을 하던 친구부부와 함께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게 된다. 이경희씨는 전공을 살려 놀이방을 운영하게 되지만 환경운동연합의 발족을 앞두고 상근자가 보강될 때까지만 도와 달라는 김병빈씨의 청에 결국 합류하게 됐다.

“환경운동을 할수록 가치가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것, 우리가 노력하고 지켜나간다면 우리 자식들에게 아름답고 쾌적한 자연을 물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며 김병빈 사무국장은 대학원 석사와 박사과정을 끝내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부부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문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준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부담스러운 면도 많습니다. 환경에 대해 일반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이 보고 알 뿐이지 알면서 실천 못하는 것도 많거든요.”

이제는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기 보다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는 두 사람은 새로운 활동가들이 나타나 지역을 위해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원해주고 싶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