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자모산 아래 푸른 꿈
키우던 모교인데...”
조금초등학교 송전분교 눈물의 폐교식
“고사리손으로 고르고 또 골라내도 운동장엔 어찌나 돌이 많았던지... 4월이면 나무를 심으며 자기가 심은 나무 표시해 놓고 먼훗날 어른이 되면 다시 찾아와 나무아래에서 쉬기로 약속했었죠. 그런 모교가 문을 닫게 돼다니요...”
22일 오전, 자모산이 한눈에 보이는 조금초등학교 송전분교(대호지면 송전리) 강당. 올 3월부터 조금초등학교에 통합돼 문을 닫게 되는 이 학교의 폐교식에서 회고사를 읽어 내려가던 1회 졸업생 김춘자씨는 그렇게 정성들여 가꾼 모교가 30년의 역사를 뒤로 한채 사라진다는 데에 아쉬움을 달래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사회에서 아직 기반을 잡지 못해 후배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 한없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회고사를 경청하던 동네 어르신들도 소리없이 눈가에 고인 눈물을 찍어냈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그 무엇 하나 자신들의 손길과 정성이 베어있지 않은 것이 없는 초등학교가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은 비단 졸업생 뿐만 아니라 자식교육에 대한 열정 하나로 모랫 가마니 손수 지어다 이 학교를 세운 지역 어르신들에게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중리와 송전리, 장정리 불과 3개 마을을 학구로 설립된 학교였지만 한 때는 3백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꿈을 키우던 곳. 분교로 시작해 학교로 격상됐다가 젊은이들이 하나 둘 농촌을 떠나면서 다시 분교로 격하돼 문을 닫게 되기까지 꼭 30년의 역사를 이어온 송전분교는 주민들의 손으로 설립되고 가꿔져온 주민들 모두의 공간이었다.
학교 터를 희사한 사람, 조경과 체육시설 등 환경개선에 후원을 아끼지 않은 독지가와 역대 체육진흥회장에게 수여된 감사장에 일일히 기록된 공적내용이 이 학교가 지역주민의 학교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언제 또 문 열 수 있으까?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에 돌아올지 모르잖여...”
“학교 문 닫은건 우리덜 책임이여. 자식 낳아 다 도시로 내보냈잖어.”
미처 버리지 못한 학교에 대한 미련과 학교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깃든 어른신들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긴 세월이 흘렀어도 학교에 대한 애착만은 변함이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만큼 송전분교 어린이들의 새로운 배움터가 알차고 튼튼해지길 바라는 기대도 남달랐다.
교육당국에서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폐교된 송전분교를 매각해 그 기금을 조금초등학교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경제논리에 의해 주민들의 정성과 마을의 역사가 깃든 농촌학교가 문을 닫아야 하는 메마른 교육현실이 가슴 아팠지만 이곳 주민들은 자신들이 세우고 가꾼 학교가 새로운 교육전당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에서 작은 위안을 삼고 또다시 새로운 희망을 걸어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