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는 또 한 장의 달력을 넘기며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왠지 모를 처연함이 가슴 저 밑으로부터 치밀어오름은 어인 연유일까. 구태여 동작동 국립 현충원을 가지 않더라도 숱한 영령이 이슬처럼 스러져간 전적지나 참전 기념탑 앞에 서지 않더라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숙연해진다.
이처럼 가슴 저미는 심정으로 6월을 맞는 것은 분단과 동족상쟁이라는 처절한 참극 속에서도 오직 조국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을 바쳐 장렬하게 산화해간 호국영령과 참전 호국용사들의 고귀한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이 크고 애틋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뿐이겠는가. 위대한 선열들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미래세대에게 자랑스런 조국 대한민국을 대물림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과 책임감이 더 선명하고 크게 떠오르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6월 ‘호국보훈의 달’이 주는 의미인가 한다.
돌이켜 보면 인류가 지상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영위해 오면서 인류 역사는‘전쟁’이라는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 평화를 바라고 염원할수록 인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평화를 위해 도구를 사용해 왔다.
따라서 오늘 지구상에 평화가 존속한다 해서 내일도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듯이 현재의 평화와 안온함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 대 국가, 서로 다른 종족간은 끊임없이 분쟁을 야기하며 투쟁을 견지해 왔고 전투를 통해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그것은 때로 파멸의 역사가 되기도 했지만 종족의 번성과 국가융성을 위한 또 하나의 방편이자,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하나의 과거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현대사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이 순간에도 지켜보고 있다. 이렇듯 힘이 있는 국가와 민족은 외부의 도전과 위협에도 자신을 지키고 보전하며 번영을 구가하지만 그렇지 못한 민족은 언제라도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 온 우리 민족은 바다건너 왜국에게 문물을 전수하고 문화의 꽃을 피우게 했지만 한순간 방심한 사이 나라마저 빼앗기고 집 없는 주인으로 전락한 채 35년 질곡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로부터 모진 신고(辛苦)와 고행(苦行)을 겪으며 이웃나라의 도움으로 광복의 기쁨을 누렸지만 그 기쁨도 잠시, 자신을 보호할 아무런 힘도 준비도 없던 대한민국은 다시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전란을 겪어야 했다.
500만에 달하는 한민족이 동족의 만행으로 피를 뿌려야 했다. 산천이 피폐되고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됨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은 생사를 알지 못한 채 긴 생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것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을 때 겪어야하는 민족의 설움이자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국제사회에서 보여지는 역사의 교훈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다시 57년 세월을 보내고 57번째 여름을 맞고 있다. 백척간두(百尺竿頭), 위기일발(危機一髮)의 순간에서 조국을 구하고 오늘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난관에도 굴(窟)하지 않고 자신을 초개처럼 던져 조국을 살리고자 한 위대한 호국 영령들의 숭고한 혼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꺼지지 않는 불꽃 투혼으로 조국을 구한 참전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그들의 거룩한 삶, 살신보국의 희생정신을 애써 외면한 채 잊으려 하고 있지 않는가? 고귀한 정신을 과소평가하고 도외시하고 하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그 누구의 도움도 아닌 자연인인 나와 대한민국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이룩된 것일 뿐 선열과 호국용사들의 피와 땀이 스민 행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양 치부하고 있다.
국민과 국가가 참전용사와 보훈가족을 위해 정성을 기울여야 함은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부모 없는 자식 없듯이 나라 없는 민족과 사회, 가족과 후손이 어디 있으며, 어찌 번성할 수 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보훈의식은 국가성원의 공동체의식과 정체성을 배양하고 국가의 안보역량을 강화해 국가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가장 기본적인 중요 덕목이다.
국가 안보는 결코 어느 누가 지켜 주는 것이 아니다. 국민 스스로가 지키고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할 때 위기 국면에서 도움의 손길 또한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맞이하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옷깃을 여미며 위국충정(爲國衷情)의 숙연한 마음으로 호국 영령 앞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