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무실에서 봉사하던 친구 하나를 어제 잃었다. 70대 중반에 있는 연세이니 젊은 사람들은 오래 살았다고 할 것이고 나같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좀더 살다갔으면 하는 아쉬움 을 느끼는 것이다. 같은 사실 앞에서.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다. 물은 흐르는 것, 지자는 이 흐르는 물 보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자연의 순리대로 따르자는 것이다. 그리고 산은 영구불변하여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인자는 자기의 이해, 영욕 그밖의 세태 등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직 움직이는 물보다는 만고부동(萬古不動)의 산의 자세를 즐기는 것이다. 아무래도 떠나간 친구가 위에 두 가지 덕을 다 겸비했던 사람이라고 느껴져 아쉬움을 더 한다.

나는 피가 끓어오르던 서른일곱 나이에 때를 잘못 타고난 것인지, 내가 모자라서 그런지는 아직도 판단이 완전하게 내려지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간에 나는 인생이 엉망이 되면서 직장에서 잘리고, 무지와 억지에 몸을 맡겨 모진 시련과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산골의 고향으로 쫓기다시피 도망쳐 겨우 생을 유지하면서 유배 아닌 유배생활 7, 8년을 지냈다. 그 유배생활동안 원석을 갈고닦아 반짝이는 보석을 만들어가듯 나 자신을 단련시키며 갈고닦은 어려움과 괴로움의 인생의 공부를 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책장을 넘겼는데 그 책장 중에 나라를 망치는 사람들의 순서를 적은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첫 번째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람은 정치인이고 두 번째는 기업인(企業人)이며 세 번째는 지식인이고 네 번째는 종교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만일 나는 위에 항목 중 해당이 안된다면 그 또한 무능한 사람이 아닌지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위대한 삶은 수많은 시련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평생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련이나 고난을 겪지 못하고 이름없이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 않은가?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시련이란 우리에게 원수가 아니라 은인이다. 밀림 속의 거목들은 수천번의 폭풍우를 이겨냈기에 튼튼한 줄기를 자랑하며 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도 이와 별 다름이 없다. 수많은 시련과 근심, 슬픔 등을 통해 우리는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역사속의 인물들 중 몇 사람의 예를 적어보면 다니엘 디포는 명작 ‘로빈슨 크루소’를 감옥에서 완성했으며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도 감옥 안에서 완성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단테는 사형선고를 받고 20여년간 국외로 추방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감명깊게 들었던 베토벤도 청력을 잃은 후 인생의 가장 비참한 시기에 그 위대한 교향곡 9번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위대한 인생 뒷면에는 언제나 수많은 시련이 있었던 것이며 고난과 시련은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