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권위주의가 창궐하던 때에 리무진 자동차에 차량번호 3호 차를 타고 다니던 고관이 86세의 나이에 한강 인도교에서 투신 자살했다는 뉴스를 듣고 고인의 명복보다 와! 하는 함성을 질렀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큰 소리로 와! 했다. 이유야 불문하고 고령자의 용단으로 노인의 비하가 날로 심화되어가는 요즈음 한덩어리의 불덩어리가 얼음반 물반의 한 겨울 한강물에 튕겨져나가는 시원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세상에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고 예수는 가르친다. 바꾸어 말하면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끝없는 후회와 반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공자는 70이 되어서야 비로소 모든 행위가 지천명(知天命) 즉 후회없이 적확해졌다고 한다. 공자도 70전에는 자기 행동에 불만스러웠다는 것이다.

지금 노년세대는 보리고개니 뭐니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던가. 젊었을 때 열심히 살아 아들, 딸 공부시켜 도시로 내보내고 우리는 허리굽고 팔, 다리 쑤시는 몰골 사나운 늙은이로 변했다. 그러나 그때의 저력을 다시 발휘해서 나라와 사회와 가정에 도움이 되는 건설적인 노인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어온 우리가 언제 산이 높다고 좌절하였으며 물이 깊다고 포기했는가. 노년이 되면 이것 저것 생각이 많게 마련이다. 몸은 쇠약해져서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육체를 지고 다니다 보니 생각 뿐이다.

생각이 많으면 행동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늙었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집에 앉아있지 말고 스스로 행동을 해보자. 조합에도 우체국에도 가고 읍사무소에도 직접 다니며 자기 삶을 자기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로 살아가자고 권고하는 바이다.

마을 경로당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 말고 잘못된 경로당의 관습을 쇄신하는 작업을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면 머지않은 장래에 개선되어 좋은 경로당, 꼭 필요한 경로당으로 변신할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사회참여 의식을 갖고 살아가면 치매도 예방되고 노년기의 고독도, 우울증도 떨쳐버리게 된다. 종적 횡적 인간관계를 넓히며 살아가면 행복은 저절로 내 안에 와 있음을 느낀다. 노년이 인생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새로운 약속과 진정한 풍요의 시간임을 깨닫게 해 준다.

「뇌내 혁명」이란 책에 노인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대목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구체적인 물질로 변화되어 육체에 적용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긍정적 사고 즉, 플러스 발상을 하는 사람은 면역성이 강하여 좀처럼 병에 걸리지 않는다. 반면 부정적 사고 즉, 마이너스 발상을 하는 사람은 쉽게 병에 걸린다. 결국 행복한 마음가짐이 세상을 살아가는 근원적인 힘이 되는 것이다.”(하루야마 시게요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