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웃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태어난다. 갓 태어난 아기들을 보라. 세상이 희뿌옇게만 보이는 그때에도 아기들은 방긋방긋 습관처럼 웃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웃음이라는 면역체를 선물로 주셨다.
어린아이들은 하루에 400번 웃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하루에 15번밖에 웃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15번 웃는 사람도 별로 없다.
딱딱한 일상과 온갖 스트레스에 치여 하루에 한번도 웃지 못하고 오히려 인상과 신경질과 짜증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어른과 어린이의 차이는 웃는 웃음에서 발견해 보고 싶다. 아이들은 마치 웃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끊임없이 웃음을 찾아 나선다. 영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코엔에 의하면 4-6개월된 유아는 소리나 접촉을 통해 웃고 10개월된 유아들은 시각적인 자극이나 옆에 있는 사람의 행위에 의해 웃으며 생후 1년 가량이 되면 스스로 재미있는 놀이를 고안해서 웃는다고 한다.
즉 부모를 통해 웃음의 소재들을 학습했다가 나중에 되살리거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흉내내며 웃는 것이다. 부모님들도 가정에서 웃으며 생활하며 웃으며 자녀를 양육하는 기쁨을 가졌으면 한다.
어린 생명들의 웃음 속에서 천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부모님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웃음을 회복해 주자.
웃음을 통해 가정을 보고 가정 속에서 웃음을 얻자. 가정에서 웃음을 잃어버린다면 죽는 날과 같은 날이다. 인상 쓰는 왕이 되느니 차라리 웃는 거지가 낳다. 기뻐서 웃지 말고 웃어서 기뻐하는 습관을 길들이자.
웃음을 가까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웃음을 좋아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억지라도 웃자. 마크 트웨인은 “슬픔은 그대로 놔둬도 자연스럽게 해소되지만 완전한 기쁨을 얻으려면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잘 웃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기쁘고 좋다. 친근감이 더해간다. 생활 속에 희망이 없고 절망만 가득하다고 느껴질 때도 웃을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보자.
유대인들은 웃음을 잃지 않는 태도로 나치의 압제를 이겨냈다. 그래서 그들은 ‘유머의 꽃은 슬픈 시대에 핀다’라는 격언을 만들어냈다.
우리 민족도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지만 웃음을 즐길 수 있는 재치가 있었다. 어르신들이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허허 참나’하고 일단 지나가는 것이다. ‘왜사나건 웃지요’라는 김상용 시인의 관조적인 고백의 출발이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