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수(米壽, 88세)를 훨씬 지나 백수(白壽, 99세)를 바라보는 아버지께서 얼어붙은 얼음과 차가운 눈(凍氷寒雪:동빙한설) 속에 우공이 산을 옮기듯(愚公移山:우공이산) 농가(農家)를 빌어 송아지를 키운다는 소식을 접하고 눈시울을 붉히고, 首丘初心(수구초심:여우가 죽을 때는 자기가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향한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올해는 쥐의 해다.

쥐는 예로부터 다산과 풍요, 지혜와 근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디즈니 캐릭터의 ‘미키마우스’를 연상하면서 만화영화 ‘톰과 제리’에서 고양이 톰을 골탕 먹이고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작고 귀여운 제리가 되도록 하면 어떨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전 재산을 잃어버린 주인공 스칼렛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 한마디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강한 희망을 표시했듯이 말이다.

무자(戊子)년에서 戊는 흙을, 子는 물을 뜻한다. 흙과 물은 서로 돕는 운이 아니라 대립하는 기운이다. 이런 상극(相剋)의 기운으로 갈등의 씨앗을 여전히 품고 있는 상황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음을 기대한다.

“잠시 구름이 흩어지고 다시 밝은 달이 나타나니 천지가 명랑하기만 하다. 근심과 걱정은 조금도 없고 우물 안에서 놀던 고기가 바다로 향해 나가는데 어찌 의기가 양양하지 않겠는가. 귀인이 와서 서로 도와주니 반드시 길하고 이로운 일이 생기리라. 집안사람들이 날로 화합하니 집안이 화평하기 그지없다.”(土亭秘訣[토정비결]에서)

며칠후 설날이 되면 고향을 찾아가고 뿔뿔이 흩어졌던 형제들이 함께모여 부모님을 뵙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부모를 생각하자.

부모의 은혜는 하늘처럼 크고 높기만 하다. 부모님의 은공에 보답해야 한다. ‘나무가 조용하려 해도 바람이 멎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해도 어버이 기다리시지 않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고 하였다.

다음은 우리를 생각하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천하여도 즐거워하고, 만족할 줄을 모르는 사람은 부자되고 귀해졌어도 걱정스럽기만 하느니라(知足者는 貧賤亦樂하고 不知足者는 富貴亦憂니라).

그리고 우리가 가정을 이루며 아내와 남편 여기기를 어찌했는가 생각해보자. 성현에 이르기를, 癡人은 畏婦하고 賢女는 敬夫니라. 즉, 어리석은 사람은 아내를 두려워하고 어진 여인은 남편을 공경하느니라 하였으며, 賢婦는 令夫貴하고 ?婦는 令夫賤이니라. 즉, 어진 부인은 남편을 귀(貴)하게 여기고, 간악한 부인은 남편을 천하게 여기느니라 하였다. 곧 현명한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내조의 공을 세워서 자기 남편을 출세하게 만든다. 그러나 간악한 아내는 자기 남편을 무시하거나 멸시하고 스스로 천한 존재가 되게 한다. 부부는 서로 학식과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을 바탕으로 협동해야 한다.

그러므로 子孝면 雙親樂이요 家和면 萬事成이니라. 자식이 효도하면 두 어버이가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온갖 일이 잘 이루어진다.

어버이께 효도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이자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내가 먼저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식인들 그를 본받고 효도하지 않겠는가? 해는 저물고 갈길 바쁜데(日暮途遠) 시절처럼 首鼠兩端(쥐가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나갈까말까 망설이다) 하지 말고 호시절(好時節)을 맞이하자.

헤세는 “밤마다 네 하루를 돌아보라. 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입으로 부르라”고 했고, ‘채근담’에서 “하루해 저물 때 저녁놀 오히려 아름답고, 한 해 저물 때 귤향기 더욱 새롭다”고 했으며, 톨스토이는 “가장 큰 행복은 한 해의 마지막에서 지난해의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눈부신 무자년희망의 백지 한 장을 새로 받았다. 그 새하얀 백도화지에 훌륭한 인생의 밑그림을 그려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