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마라톤대회에서 마라톤 완주를 마친 회원들.
▲ 동아마라톤대회에서 마라톤 완주를 마친 회원들.

16일 새벽 4시53분. 어둠이 짙게 깔린 신터미널 앞. 가로등불에 비친 당진마라톤클럽 회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묻어난다. 겨우내 다져온 실력을 시험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날, 회원 대부분은 잠을 설쳤다.

각국 정상급 마라토너들이 대거 참가하는 2008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79회 동아마라톤대회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메이저급 대회에 속하는 큰 대회로 지난해 이봉주 선수가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 낸 대회이기도 하다.

2만5천여 명이 참가한 이날 대회에서 당진마라톤클럽 회원 18명은 모두 5시간 안에 완주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 서동철·김동환 회원이 풀코스를 2시간 59분 59초 이내에 완주해 ‘서브 쓰리(sub-3)’ 마스터스 마라토너에 올라 동아마라톤 명예의 전당에 등록됐다. 훈련부장을 맡고 있는 서동철 회원의 이날 기록은 2시간42분54초로 남자선수 중 54위다.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한 오현주, 노승남, 유병윤 회원도 5시간 안에 완주를 성공했다.

첫 완주에 성공한 유병윤 씨는 “잠을 설치며 걱정했는데 동료들이 격려해 준 덕분에 꿈을 이뤘다”고 기뻐했다.

함께 뛰고, 함께 땀 흘리며 쌓아가는 우정

2003년 창립된 당진마라톤클럽은 현재 33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매주 일요일 오전 7시에 당진종합운동장에 모여 석문 초락도까지 왕복 25㎞ 정도를 달린다. 또 주중에는 육상운동선수 출신인 서동철 훈련부장을 주축으로 각종 훈련을 통해 몸을 단련하기도 한다.

당진마라톤클럽의 또 하나의 특징은 회원들의 구성이 다양하다는 것. 직업뿐만 아니라 연령대도 다양하다. 장명환 사무국장은 “순수하게 달리기를 좋아하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어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클럽을 소개했다. 회원 간에 호칭도 모두 ‘형님, 아우’다. 회원들은 2시간동안 함께 뛰며 땀 흘리고 나눠 먹는 우유 한 잔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작은 소모임에도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점점 삭막해져 가는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풍경이다.

“우리는 오늘도 달린다”

42.195㎞. 오로지 두 다리로만 뛰어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가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마라톤 완주는 결코 쉽지 않다. 회원들은 마라톤의 매력으로 ‘강한 성취감’과 ‘건강유지’를 꼽는다.

이번 대회에서도 완주해 ‘30회 완주’를 달성한 전기홍(53) 고문은 “뛸 때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고비를 스스로 이겨내고 맛보는 완주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다”며 “다른 운동에 비해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성취감이 아주 큰 운동”이라고 말했다.

회원 중 대부분은 마라톤을 하면서 발에 물집이 잡혀 부르트고 발톱이 빠지는 고통을 겪었다. 달리다 다리에 쥐가 나서 뛰다 멈춰 서기도 해야 했다. 때론 뛰던 것을 멈추고 돌아와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기록보다 스스로가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중요시 여긴다.

서동철 훈련부장은 “모두가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인 만큼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완주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라톤으로 15㎏을 감량한 김완회(51) 씨는 “처음에는 무릎 때문에 고생했는데 내 실력에 맞춰 뛰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뛸 수 있는 한 계속 마라톤을 하고 싶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석태 회장은 “영정사진도 신나게 뛰고 있는 사진으로 하고 싶다”며 마라톤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다.

이날 대회를 마치고 당진으로 돌아 온 회원들은 “오늘 하루도 보람있게 살았다”며 완주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김석태 당진마라톤클럽 회장

“당진에서도 마라톤대회 개최되길”

김석태 회장은 지난 2005년 5월 석문방조제에서 열린 제3회 해변 유채꽃마라톤대회에서 처음 마라톤에 도전했었다. 선수 등록도 하지 않고 10㎞를 달린 김 회장의 당시 기록은 18등. 이때 자신감이 생긴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클럽 활동을 하면서 마라톤의 재미를 알게 됐다.

“혼자 동네를 뛰다가 회원들과 함께 뛰며 연습하니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어요. 서로 아껴주고 격려해주는 마음이 친 형제나 다름없죠.”

김 회장은 마라톤은 긴 거리를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하는 운동이라 그만큼 포기하기도 쉽다고 말했다.

“끝도 없이 긴 거리를 달리면서 다리가 당기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을 여러번 맞이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수없이 많이 들죠.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도 힘들다’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합니다.”

50대 후반에 접어드는 김 회장은 “마라톤은 남녀노소, 신체조건 등을 불문하고 모두가 공정하게 정해진 거리를 뛰는 운동”이라며 “젊은 사람들과 동등하게 겨뤄 일궈낸 성과기 때문에 긍지와 자신감이 한층 더 크다”고 말했다.

대회장에 응원온 김 회장의 작은딸 영글씨도 “아빠가 자랑스럽고 멋지다”며 미소 짓는다.

동호회 활동이 활발한 데 비해 당진에 마라톤대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김 회장은 “시승격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마라톤대회가 개최돼 당진도 알리고 주민들의 건강도 함께 지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승남 당진마라톤클럽

59세 마라토너 “이제 시작입니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나이 때문에 마라톤은 생각도 안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환갑은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잖아요. 이제 시작이죠!”

58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마라톤을 시작한 노승남(59)씨는 지난 16일 대회에서 첫 완주를 달성했다. 비록 신발에 부착해야 할 기록계를 가슴에 달아 기록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해프닝을 만들기도 했지만 노씨는 개의치 않는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맛본 성취감과 자신감이 기록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1년 됐는데 확실히 몸이 좋아진 걸 느껴요. 생활에 활력과 자신감이 생겼어요. 주위에서 성격이 밝아졌다는 이야기도 듣고요.”

친척에게 마라톤복을 선물받은 것이 계기가 돼 수소문 끝에 마라톤클럽에 가입하게 된 노씨는 면천에서 회사를 다니며 살고 있다.

“마라톤을 하면서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나니 세상을 보는 마음이 한결 넓어진 걸 느껴요. 일상에서도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게 됐어요.”

가족들은 나이를 생각해서 무리하지 말라며 걱정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씨의 성공을 격려해준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죠. 나이를 먹을수록 몸에 좋은 보약이나 음식보다 운동이 정말 필요해요. 늦게 시작했지만 60대가 되어서도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건강해야 가족도 행복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