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에 오려 했는데 한발 늦었습니다”

신평중고 출신 박기억 변호사

올 3월 서산에 개원

송악 청금리 박영섭씨 장남

‘법률서비스 주고 싶다’

최근 젊은 변호사들의 개원소식이 사람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그들이 거쳐온 젊음이 그 어느 시절보다 정의와 양심에 예민한 세대였다는 점에서 일단 믿음이 가고, 그들이 사회에 대해 갖는 ‘서비스’ ‘봉사’라는 관점 또한 그 이전 세대의 목에 힘주는 권위나 그 이후 세대의 심한 개인주의에는 없는, ‘희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진이 내고, 다시 당진에 흘러 내려오려 한 박기억(38세) 변호사도 그런 세대 30대다. 아쉽게도 한발 늦어 고향땅 옆, 서산에 개원하게 되었긴 하지만 말이다. 바로 얼마전에 당진에 개원한 안중민 변호사와는 사법고시 같은 기수라는 묘한 인연을 지녔다.

박 변호사는 토종(?) 당진산이다. 서정초등학교와 신평중학교, 신평고등학교를 차석·수석 다퉈가며 졸업했다. 아버지 박영섭(68세)씨와 어머니 이재윤(65세) 여사는 지금도 송악면 청금리에서 과수원 농사를 짓고 계시다.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에서는 4년간 특별장학생을 지낼 만큼 모범적이고 성적이 우수했다. 또 성균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상사법 전공) 수석졸업, 석사장교라는 이력에서 보이듯 의지와 절도도 강하며 고시반 전체를 통솔하며 이끌어온 리더쉽도 크다.

그러나 91년, 나이 서른에 뒤늦게 사법고시에 도전하며 고배를 마시는 쓰라림도 겪었다. 94년 당시에는 송악면 과수원집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95년 제38회 사법시험에서는 전국의 수백명 합격자 중에서 23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합격했다.

박 변호사는 성취와 도전, 발전에 대한 욕심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다. 삼성그룹에서 고문 변호사로 오라는 제의를 거절하고 자기 경험과 능력을 쌓기 위해 변호사 개원을 한 사실이나 앞으로도 법률시장개방을 앞두고 국제변호사로의 진출을 위해 유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점 등이 그걸 말해준다.

그는 변호사 얼굴 한번 못봤다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답답하다고 멀리 고향에서 자문을 구해오는 친구들을 보며 쉽게 만날 수 있는 법조인서비스 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3월 22일 개원한 사무실은 서산시 동문동 조흥은행에 자리잡았다. 작년 11월 뒤늦게 결혼한 의사 아내와 늦어도 한참 늦은 신혼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