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의 철부지가 웨딩드레스를 입던 날 세상은 손만 펼치면 정복할 수 있는 손쉬운 대상으로 다가왔었다. 그러나 둘째를 임신하던 스물여섯부터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갔고 아이를 출산한 그해 겨울 세상은 온통 넘기 힘든 산으로 존재했다.

전신마비 증세, 중증장애......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숨쉬기조차 힘든 통증은 차라리 죽음의 안식을 동경했다.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으며 한숨인들 얼마나 쉬었을까?

다 버리고 떠나기를 바랐건만 그런 여자의 생명줄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대소변 치레는 물론이고 밥도 떠먹여줘야 하는 아내의 가슴에 남편은 끊임없이 소망의 나무를 심었다.

열 한 번의 전신마취를 하며 무릎, 팔꿈치, 어깨에 인공관절을 삽입하였다. 관절경 시술을 했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인공관절로 대처를 했고 삽입한 인공관절의 부속이 망가지면 남편은 주저 없이 아내를 등에 업고 수술대로 향했다.

25년의 세월동안 남편은 한 번도 빠짐없이 아내의 병상을 지켰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비어있는 엄마의 자리까지 채우며 살았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그리고 홀어머니의 아들로, 다섯 남매의 맏이로써 주어진 자신의 몫을 감당하기도 버거운 상황이건만 그는 아내 몫까지 말없이 감당했다.

몇 번이나 가망이 없다는 사선을 넘어 50살을 채운 여자는 한 남자의 사랑하는 방법을 잔잔히 글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단 하루라도 가장이라는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자아를 찾아 길을 떠나라고 등을 떠민다. “어디로 간다고 말하지도 말고 전화도 하지 마세요.” 여자가 그렇게 남편의 외박을 준비한 아침, 길을 나서기 전 남자는 변함없이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혼자 힘으로는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1급지체 장애인임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여자.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전북지체장애인협회장을 맡아 자신도 온전치 못하면서 같은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여자. 작가 유영희씨와는 10여년전부터 글을 좋아하는 동호인으로 만났다. 블로그를 통해서 서로 글을 감상하고 평가하던 중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그녀의 필력에 굴복하고 열성팬이 되었다.

그녀의 처녀수필집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를 읽으며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던 감정이 아직도 가슴 밑바닥에 응어리처럼 맺혀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각종 범죄가 판을 치는 시대지만 진정한 사랑과 가정과 이웃에 대한 배려의 따뜻함을 같이 누렸으면 한다.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

지은이 유영희 | 출판사 책읽는 사람들 | 가격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