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情 한 벗

느긋한 아침 톡톡 털어

학교에 가네

어쩌다 일등 가면

먹물주전자 들고 벼루마다

순배하고서 古淸 墨을 곧게 세운다네

아이들 재잘거림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친정집 앞 川

이름을 세거듭 고쳐 부르시면

그제사 강을 만난 川처럼

잦아들곤 하지

선생님이 ‘봄’자를 쓰면

화선지 가득 봄기운 일어나

온 강을 데우는데

고삐 풀린 소마냥 내달리던

나의 붓 흠칫 서다

꽃비가 내리는 남산공원에서 이윤미씨를 만났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이 내려앉은 벤치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고모의 연애편지를 훔쳐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시절 함께 살던 고모 애인이 군대에 있었어요. 연애편지를 우체통에 부치는 심부름을 하면서 몰래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했죠. 그 때 글 쓰는 묘미를 알게 됐고 중학교 때 전학간 친구와 지금까지 편지를 주고받고 있어요.”

이씨는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즐겨한다. 그녀의 작품 ‘무정한 벗’도 지난 방학에 아이들과 함께 은퇴한 노교사에게 붓글씨를 배우면서 느꼈던 감정을 시로 적어낸 것.

“붓글씨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서 칠십평생 붓을 잡았지만 붓은 참 무정하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오랫동안 함께 했는데도 몇일만 묵혀두면 굳어버려서 쉽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서...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선생님의 먹 가는 소리 등이 정겨웠던 그 날의 느낌을 시로 표현한 거예요.”

작년 이맘때 호수시문학회에 가입해 시 쓰기를 시작한 지 1년 남짓 된 터라 아직 이씨에게 시는 어렵기만 하다.

“시는 단어 하나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생각을 꼽 씹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어요. 시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무엇 하나를 끄집어내는 게 쉽지 만은 않지만요.”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이윤미 씨는 자신을 ‘공주’라고 소개했다. ‘공부하는 주부’를 줄인 말이라고.

웃는 모습이 흩날리는 벚꽃과 잘 어울리는 그녀는 늘 ‘학생’이고 싶다며 가방에서 책 한권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