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이맘때 본지를 통해 전신마비로 누워있는 아들의 손발이 되어 살아가는 아버지 김덕성 이장의 이야기를 소개한 바 있다. 당시 김덕성(64) 이장의 아들 면수(36)씨는 느닷없는 교통사고로 3년째 누워있었다. 하루아침 사고로 우리 몸의 가장 중심부와 연결된 5번 목뼈를 치명적으로 다쳐 목 아랫부분인 온몸을 쓰지 못하게 된 1급 장애인이 된 것이다. 그 후로 7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23일, 꽃잎에 내린 봄비가 채 마르지도 않은 오후에 김덕성 이장을 찾았다.

7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장님 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재작년 면수씨는 예쁜 재수씨를 얻었다. 면수씨 동생 한수씨가 결혼을 한 것이다. 요즘 김 이장님은 그 덕에 웃고 산다고 했다. 지난 2005년 장애인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폈던 황우석 줄기세포 사태 이후, 이장님 가족은 여전히 줄기세포에 대한 희망으로 숨을 쉬고 하루를 산다. 면수씨도, 이장님도, 어머니 송순동(56)씨도 꼬박 칠십년 같은 일곱 해를 살았다.

사고 이후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매끼 식사를 떠먹이고, 한줌씩이나 되는 약을 챙겨 먹이고, 하루 네 번 관절운동을 시키고, 양치질과 세수, 목욕을 시켜주어야 한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던 이장님은 끝내 눈을 감아 버렸다.

“바람 앞의 촛불같은 세월이었어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오직 아들 하나를 바라보며 살았죠. 7년 전만해도 이맘때가 되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요즘엔 점점 ‘기적’이 아니면 어렵지 않을까 울적한 생각이 들어요.”

환갑을 넘기면서 이장님의 조급함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나이가 들수록 몸도 마음도 힘이 든다. 부부가 세상을 뜨고 나면 누가 아들을 돌봐주나...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버지와 아들은 해가 더해갈 수록 오가는 말이 줄어든다. 아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아버지도 자신의 온몸을 맡긴 채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하는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도 서로에게 무언가를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힘든 세월이었다.

면수씨의 운동시간을 알리는 송씨의 말소리가 조용조용하다. 이장님 부부의 대화는 조용히 이뤄진다. 부부싸움은 없냐는 말에 김 이장은 손사레를 친다. 서로가 고통을 나누고 산다는 걸 알기에 큰 소리를 낼 일도 없다. 사고 이후 부부싸움은 없었다.

김 이장은 자신과 부인이 아들 곁을 지키지 못하는 날이 왔을 때 아들이 쉴 수 있는 복지시설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곳이었으면 싶다.

면수씨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거나 온라인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고 전에는 무척 활발했던 아이가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으려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래서 그런지 온통 부수고 때리는 게임이에요. 입으로 막대를 물고 어렵게 하는 컴퓨터지만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해요.”

7년 전 김 이장님을 만나러 왔던 선배 기자의 말에 의하면 이장님 댁은 꽃피고 새우는 예쁜 언덕 위에 하얀 집이었단다. 하지만 세상은 방안에만 갇혀있는 면수씨만을 남겨둔 채 어느덧 저만큼 변해버렸다. 앞뜰에 나서면 훤히 내려다보이던 당진읍내는 아파트 공사 현장으로 가려졌다. 이젠 면수 씨를 보러가려면 아파트 공사현장 입구로 들어서 레미콘과 굴삭기를 피해 덜컹거리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10년 째 땅에 발 한번 못 딛고 사는 중증장애인이 있는데 군이나 시공사 측 어느 곳에서도 대책도 없이 방치해 두고 있어요. 너무 무책임하지 않습니까. 최소한 안전하게 집으로 향하는 길이라도 마련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언제 또 응급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응급차가 드나들기 힘든 여건. 무심한 이 세상이 이장님은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