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말한다고 들어주나. 지금까지 마을 주민들이 경제자유구역 반대한다고 그렇게 외쳤건만 결국에는 지정됐잖아. 현대제철 들어올 때도 많은 군민들이 반대했잖아. 그 추운 겨울날 군청앞에서 천막치고 농성해도 결국 들어 왔잖어. 말해도 소용 없어.”
김진복 이장은 행정과 국가시책에 대한 불신이 커져만 가고 있는 듯 했다.
김진복 이장은 부곡리가 살기 좋았던 작은 농어촌 마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아산국가산업단지로 마을의 절반이 잘려나가고 그뒤 공구상가단지가 추진되면서 마을은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
김 이장은 “행정에서 자기네들 땅인냥 주민땅을 맘대로 주무르고 있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마을 주민들이 입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 상생 하기 위해 산업단지와 경제자유구역을 추진한다고 말하는데 누가 상생하고 누가 피해를 보는 건지 다 입에 발린 소리뿐이여. 실제로 피해는 주민들이 입고 있는 거 아니야? 어려워도 땅 몇평 일구며 먹고 살았는데 이 것마저 빼앗으면 어디가서 살아야 하냐고”
김진복 이장은 “상록수 마을인 부곡리는 문화마을”이라며 “차라리 필경사를 중심으로 문화마을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개발될 텐데 그동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죽으라는 소리지. 개발을 하더라도 우선 이주대책과 생계대책을 세운 후에 개발해야 하는 거 아녀.”
그는 “아무리 얘기해봐야 소용 없다”며 “보상가가 맞지 않는다면 죽기살기로 맞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곡2리 윤인호 지도자] "노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필경사 바로 옆 600여평 비닐하우스에서 꽈리고추의 가지를 치고 있던 부곡1리 윤인호 지도자를 만났다. 넓은 비닐하우스 안에는 푸른색이 넘쳤다.
그러나 윤인호 지도자는 “인근 공단의 공해로 꽈리고추들의 병이 심해져 어쩔 수 없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꽈리고추가 지난해에 비해 절반도 안나오고 있습니다. 인근 공단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기가 나빠져 생긴 현상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죠.”
그는 꽈리고추뿐만 아니라 곡식도 잘 자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화와 국가시책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또 땅을 수용당해 떠나야하는 입장이 되면서 막막하기만 합니다. 부곡리 땅의 60%이상은 외지인들의 소유죠. 나머지 40%의 토지를 마을 전체 주민의 20~30%가 나눠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주민들은 그저 땅 몇평 혹은 집터만 있는 경우도 있어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걱정입니다.”
윤인호 지도자는 특히 노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부곡1리는 다른 마을에 비해 고령인구 비율이 높고 대부분 영세한 사람들입니다. 또 3~4대째 마을을 지키고 있는 주민들이죠. 이런 노인들이 어디가서 무얼 하며 살겠습니까.”
윤인호 지도자는 “영세한 노인들이 남의 땅 임대해서 농사도 짓고 품팔아 그럭저럭 먹고는 살고 있지만 보상 몇푼받아 마을을 떠난다면 다 죽고 말 것”이라며 “이들이 먹고 살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주고 한데 모여 살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곡2리 모친과 단둘이 살고있는 이재훈씨]
"굴도 캐고 바지락 잡던 살기 좋돈 곳"
부곡리에서 3대째 살고 있다는 이재훈(62)씨는 노모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의 아들들도 이곳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인근 복운리와 수원 등지에서 일하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던 땅을 외지인들에게 다 팔고 이제는 집과 집터만 남아 있다.
“시골에서 농사지어서 먹고 살수 있어야지. 애들 가르치고 장가보내려면 땅이라도 팔아야지 별수 있나. 지금은 집하구 집터만 남았어.”
이씨는 어렸을 적에는 인근 바다에 나가 고기도 잡고 어머니따라 갯가에 나가 바지락도 잡았다.
인심 좋고 살기좋았던 마을이 산업단지로 바다가 막히고 얼마 없는 토지에서 농사지으며 근근히 먹고 살았다. 대부분의 농촌 농민들이 그렇듯 이씨도 많지 않은 토지를 팔아 돈을 만들어 썼다. 그러다 보니 마을의 땅 대부분이 돈많은 외지인들의 소유다. 그래도 임대해 농사도 짓고 텃밭에 배추며 무며 키워 먹고 살았다.
이씨는 “예전에는 마을사람들이 많았는데 국가공단 들어서면서 이주한 사람들이 꽤 된다”며 “지금 남아 있는 마을 사람들도 경제자유구역으로 땅이 수용되면 마을을 떠나야 하지 않겠냐”고 걱정했다.
이씨는 “토지가 수용되면 보상받은 돈으로 집한칸 땅한평 사기도 힘들 것”이라며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들 이재훈씨와 함께 집밖으로 나와 있던 노모는 “옛날에는 바다에 나가 굴도 캐고 바지락도 잡았는데 지금은 그도 할 수 없다”며 “참 살기 좋은 곳이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일은 그때가서 생각해야지 별수 있나. 어떻게든 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