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 들어서서 한참 뒤에야 마주할 수 있었던 이병섭(57)씨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요즘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요. 힘들다 보니 코피가 다 나네요.”

이씨는 2000년도 6월부터 가나안건재약업사를 운영해왔다. 그 전에는 가나안약국을 운영했으나 의학분업을 계기로 건재약업사로 전환했다. “개업 당시에는 당진에 한약건재만 취급하는 곳이 없어 건재약업으로는 1호였어요.”

그가 어릴 적 꿈이었던 해군이 아닌 약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중3때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시면서부터다. “계속 약을 드셔도 낫지 않으셨어요. 그 후로 인천으로 가서 외할아버지댁에서 자랐지요.

그 당시 외할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셔서 자연스레 한약을 접하게 되었어요.” 이씨는 선친을 여의고 외가에서 자라면서, 낮에는 한약방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학교를 다녔다. “약을 배우면서,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이만큼만 알았더라면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한편 이병섭씨는 “당진시대 신문은 광고 빼고 모든 코너를 정독한다”며 열독자임을 자처했다. 이씨는 “당진시대 신문이 처음 접했을 때보다 오자도 없어지고 있고 세련되어 지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난 국회의원선거 때 편파적 보도를 했다는 말들이 많았다”며 “앞으로는 편파적인 보도를 배제하고 공평한 보도를 했으면 좋겠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