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두견주의 유래

공신 복지겸의 병 고친 ‘천년 명주’

면천지역에서 두견주가 빚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기록되어 내려오는 바 없지만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딸 영랑의 전설에 따라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서기 918년 홍유, 배현경, 신승겸 등과 함께 고려건국에 공을 세운 복지겸이 원인모를 중병을 앓게 돼 식읍으로 받은 면천에 내려와 휴양할 때 제조되었다고 한다.

복지겸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자 당시 열일곱살이었던 그의 딸 영랑이 아미산에 올라가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부친의 병을 고치려면 아미산에 핀 진달래와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의 물로 빚어 백일이 지난 다음 부친이 드시게 하고 은행나무 두그루를 심어 정성을 드려야 나을 수 있다는 신령의 계시를 받았다.

영랑은 이 계시에 따라 술을 빚어 부친께 올리니 부친의 병이 말끔히 나았는데 바로 이 술이 두견주의 효시가 되었다. 지극한 효성에 의해 빚어져 아버지 생명을 구한 두견주는 이때부터 약용술로 알려지게 됐다.

술맛은 물이 좌우한다고 하는데 두견주를 빚는 안샘(면천초등학교 옆) 물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으며 물맛은 어느 샘의 것보다 단맛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두견주는 자생 진달래가 유난히 많은 면천지역에서 가용주로 오래전부터 많이 빚어져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봄이 되면 진달래꽃을 따다 이를 말려 두견주를 빚는 농가가 있다.

면천두견주가 상품화 되어 시판된 것은 지난 8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박승규씨의 가문에 의해서였는데 박씨의 조부 박성흠씨가 어머니로부터 제조법을 전수받아 생산·시판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1963년 정부가 근검절약 정책의 일환으로 쌀로 술을 빚을 수 없게 함으로써 두견주 시판의 길이 막혀 20년간 생산이 끊겼다가 박성흠씨의 손자 박승규씨가 두견주 제조법을 연구·재현하게 되면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됐다. 86년 중요무형문화제 864호(향토술담그기 제조비법)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판돼 왔다.

면천두견주는 19도의 주도를 지니고 있는 술로 독특한 향과 감칠맛이 있으며 취하도록 마셔도 뒤가 깨끗해 두견주로 술병을 앓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 한 때 ‘청와대 술’로 불리기도 했다.

자료 ; 유서깊은 면천(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