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이 수도권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울을 기점으로 도달시간을 고려하여 물론 수도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이란 말은 서울을 감싸고 있는 서울, 경기, 인천을 아우르는 법적인 용어이다. 따라서 지하철 1호선이 연결되어 생활권이 서울로 편입되었다고 할 수 있는 천안도 수도권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런데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한 이 수도권에서 전국 땅값의 70%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불균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즉, 비수도권 88%의 땅값이 수도권대비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할 때 지방의 소외감은 한마디로 개똥참외와 비교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들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대로 일찍이 모든 발전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그 파생되는 문제의 심각성이 수없이 제기되어오다 결국에는 국가균형발전의 일환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비롯, 기업도시같은 테마발전플랜들이 수립, 추진되어 왔던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는 수도권 규제를 철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문수 경기지사 등의 얘기를 듣노라면 시계가 거꾸로 가서 우리가 마치 60~70년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규제를 풀어 체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나? 이는 마치 서울대 몇 명 보내냐에 따라 학교의 서열이 매겨지던 시절, 극소수 우등생들에게 집중하고 나머지 보통학생들의 교육은 팽개치던 사립고등학교 교주의 용렬한 사고방식과 다를 바 없다.
수도이전같은 국가 중대사가 박정희대통령 생존시에 이미 깊이 검토되어 왔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 중차대한 문제가 아직도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하는가?
승자독식이 아닌 더불어 잘 사는 나라, 그래서 수도권이나 지방이 어떤 유행가 가삿말 그대로 ‘누구나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넘쳐나는’ 그런 나라를 지향해 나가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우리는 번번히 기득권세력들의 조직적인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에는 법기술자들이 만들어낸 관습헌법이란 것에 된통 한 방 맞더니, 이젠 드러내놓고 가진 자 중심의 정책들에 속수무책, 무한경쟁에 내몰린 우리네 서민들의 신음소리가 이 스산한 초겨울의 추위를 더욱 쌀쌀하게 느껴지게 한다.
불쌍한 서민들!
지난 선거 당시, 오로지 경제만 살리자는 여론에 휩쓸리며 소위 747공약 즉, 7% 성장, 4만불 소득, 7대 강국진입이라는 화려한 캐치프레이즈에 얼마나 마음이 황홀했던가.
그런데 그렇게 뽑아준 대통령이 만든 정부로부터 실컷 두들겨 맞고있는 이 불쌍한 서민들이 나는 너무도 가슴 아프다. 부자되게 해 주겠다는 유치한 공약에 속아넘어간 유치한 민중들이 어찌보면 당연한 고통을 받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 그래도 민주주의가 이건 아니다! 적어도 대통령쯤 한다는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철학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저 오바마의 연설을 한번 들어보자! 얼마나 감동적인가?
“나는 히스패닉의 미국, 흑인의 미국, 아시안들의 미국도 아닌, 200년전 옹기종기 벽난로 앞에 모여앉은 가난한 이민자들의 그런 미국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곳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는,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난 부자가 안돼도 좋다. 다만, 이 땅에 차별받는 사람들의 한맺힌 절규가 없는, 그래서 항상 삶에 대한 희망이 넘쳐나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