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연숙 자유기고가
신영복 님의 ‘나무야 나무야' 를 읽다가 재밌는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임진강가에 반구정(伴鷗亭) 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고 합니다. 세종조의 영상이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 황희 정승이 벼슬직을 그만두고 반구정에서 90세의 천수를 다할 때까지 갈매기를 벗하며 그의 노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한적하기가 오백년 전 그대로다 싶을 정도인 반구정은 지금도 갈매기를 벗하며 철새들을 맞이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 곳과 비슷한 이름의 정자가 있습니다. 바로 서울 강남의 압구정(狎鷗亭) 입니다.
세조의 모신이던 한명회(1415~1487)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입니다. 반구정의 ‘반' 과 압구정의 ‘압' 은 둘다 ‘벗한다' 를 뜻합니다. 확연히 다른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이었건만 여생만큼은 두 사람 모두 갈매기를 벗하며 유유자적 보내고자 하는 바랍이었나봅니다.
이 두 정자는 다같이 노재상이 은퇴해 한가로이 갈매기를 벗하며 여생을 보내던 정자입니다만 지금의 모습은 참으로 다릅니다. 반구정은 예전과 별 변함없지만 압구정은 이미 그 자취마저 없어지고 현대아파트 72동 옆의 작은 표석으로 그 유허함을 가리키고 있다고합니다.
황희는 명재상, 현명한 재상 등으로 불리지만 한명회는 권력의 재상, 모략의 신하로 남아있습니다. 압구정이 콘크리트 더미 속 한 개의 작은 돌맹이로 왜소화되어 있음에 반해 반구정은 유유한 임진강가에서 이름 그대로 갈매기를 벗하고 있는 극적인 대비를 들며 글쓴이는 최선의 정치가 무엇인지를 언급했습니다. 정치는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내고 키우는 일이라 주장하고, 권력의 창출 그 자체는 잠재적 역량의 계발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그 반대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대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다시피했던 한명회가 지은 압구정은 현재, 초라해졌지만 그가 선택한 압구정은 지금 우리나라의 부를 상징하는 동네가 됐습니다. 반면에 청렴과 겸허의 황희 정승이 지은 반구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임진강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서있지만 주변지역은 지금도 역시 부와 권력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무야 나무야’는 이밖에도 백담사의 만해와 일해, 온달산성의 평강공주, 한산섬의 충무공 등 총 24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통일 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20년 동안 복역하다 가석방되어 지금은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중인 작가가 전국의 사연있는 곳을 두루 답사하면서 국토와 역사에 대해 사색한 글들입니다.
역사는 나무를 벨 때 나오는 톱밥과도 같다고 합니다. 톱밥을 그냥 버리면 아무 쓸모가 없지만 그것을 땔감이나 다른 재료로 쓴다면 아주 유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국토에 남겨진 역사적 흔적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오늘에 반추해보는 작가의 시선과 지적이 예리합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자신의 몸을 던졌던 작가로서 톱밥을 그냥 버릴 수가 없었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