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 선생의 유품이 생전 선생의 문학의 산실이었던 필경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지난달 26일부터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는, 심훈의 아들인 심재호(75)씨를 만나고 돌아온 당진군 '심훈선생 유품인수 추진위원회' 위원들이 전하는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다. 미국에 사는 유가족을 방문한 추진위원들은 최종길 인수위 부위원장, 이병성 추진위원 상록문화제 부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신현만 당진군 문화체육과 공무원 등이다. 미국을 방문한 추진위원들에 따르면 당진군과 심훈 선생의 유가족들은 선생의 유품을 당진 품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 추진위원들 미국방문 논의결과

미국에 전시보관중인 심훈 선생의 유품은 유가족들이 수십 년 동안 전국을 돌며 어렵게 모은 것이다.

이에 따라 당진군은 유품 이전에 앞서 현재 운영 중인 '필경사'(筆耕舍,소설 상록수 집필지) 및 '상록수 문학관'을 재정비하고 관련 운영 조례를 제정하기로 했다. 또 유품을 토대로 심훈선생에 대한 연구작업도 병행하기로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심훈기념관'을 조성해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영화 감독, 문학가로 살아왔던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유품이전시기 및 사전 작업

유품의 이전시기는 심훈기념관 조성계획을 비롯해 유품전시 및 세부 활용계획 등이 마무리된 때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못 박을 수는 없지만 당진군의 제반 사전 유품인수에 필요한 제반 준비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올 연말 또는 늦어도 내년 중순 이전에는 유품이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진군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유가족들이 미국에 있는 선생의 유품을 당진으로 이전하기로 한 만큼 이에 필요한 관련 시설을 제대로 정비하는 등 준비작업에 속도를 낼 예정"이라며 "특히 심훈 선생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작업에 착수해 자료전시 및 향후 '심훈기념관'을 조성에 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유품가치 해외에서 먼저 인정

사실 심훈 선생의 유품에 대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먼저 가치를 인정했다. 일본 도쿄대와 미국 시카고대 등이 한동안 선생의 유고를 사겠다며 백지수표를 건넸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는 선생의 시를 번역했다.

심훈 선생이 남긴 육필 원고가 다른 나라에서 세계적인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 외면해 왔던 것. 다행히 최근에는 문화재청에서 가치를 인정하고 유품을 문화재로 등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유가족들이 유품이전을 당진에 하기로 한 것은 당진이야말로 심훈 문학의 산실이자 심훈선생의 얼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진군이 심훈정신 계승을 위한 다양한 사업 등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 것도 유품이전을 결정하는 주요요인이 됐다.

◇선생의 유품은

미국을 방문한 위원들은 선생의 유품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심훈 선생의 유품은 △장편소설 <상록수> 및 <직녀성> <영원의 미소> 친필 원고를 비롯해 △단편소설 <황공의 최후> 친필 원고 △시집 <그날이 오면> 일제총독부검열판 △ 장편영화 <상록수> 각본 △영화소설 <탈춤> 각본 △영화 <먼동이 틀 때> 촬영 원본 △ 붓으로 쓴 절필 원고인 <오오 조선의 남아여> 등 다양하다. 특히 국내 근대 작가 중 이처럼 풍부한 육필 원고가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훈 선생은

한편 심훈 (沈熏, 1901~1936)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 겸 영화인, 언론인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영화계에 투신,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직접 영화를 원작·각색·감독하기도 했다.

당진에서 기거하며 <상록수> 등 작품 활동에 열중하다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심규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