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 본인이 만족 할 만큼 완벽하게 행동하고 처리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는 그의 청장관 전서에서 “모든 일을 처리 할 때 아주 잘 처리 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변보는 것은 매우 사소 한 일이지만, 그것도 잘 보기란 역시 어려운 일이다"라고 지적 하고 있듯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처리하는 매사에 따라 우리의 기분이 좌우되고, 감정의 기복이 생기게 된다. 그 감정의 외적 표현이 개인의 성격 혹은 성향을 결정하게 되어 결국 사소한 일의 처리 여부가 개인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크고 작은 일의 처리가 연속 되어있어서 그것이 생리적인 현상이거나 혹은 정신적 영역의  문제이거나를 막론하고 그 처리 과정의 유기적인 현상의 총체를 개인의 하루라고 하며 이 하루의 외연을 넓히면 개인의 인생사가 되는 것이다.

귀농 4년차로써 초보 농군의 티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크고 작은 실수를 거듭하면서 제대로 일 처리를 못하여 손해도 보고, 깨닫기도 한 것이 '사소한 것의 결과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곳 당진지방의 사투리 중에 “시절”이라는 말이 있다. 때와 시간을 모르고 날뛰는 바보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농사짓는 사람이 때를, 즉 시절(時節)을 모르면 정말 시절이 되는 것이다. 변보는 것이나 때를 아는 것이나 일견 매우 사소한 일 인 것 같으나  이 사소한 변보는 문제가  생명을 위협하는 암의 전조 증상일 수가 있고 나갈 때와 물러 날 때를 모르고 날 뛰다가 인생이 피곤해지는 경우가 무릇 기하인가?

올해도 끊임없이 묻는다. 생강 심을 때가 언젠가? 콩 심을 때는…….

물론 작년에 기록해 놓은 일지도 있고 농촌 진흥청에서 안내하는 영농 달력도 있지만 안심이 안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우리 같은 초보 농군만 때를 묻는 것이 아니다. 팔십이 훨씬 넘으신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도 때를 물으시고 40년 이상 농사를 지어온 농사박사 우리 친구도 뿌릴 때를 묻고 거둘 때를 묻는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수시로 서로 서로에게 습관적으로 묻는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다 알면서 왜 물어보지? 하는 의아심까지 들었다.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농사에 관련된 모든 것이 데이터화 되어 몸속에 저장 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시절이 아니다. 시절이어서 묻는 것이 아니고 예년과 비교 한 절기상의 기후라든가 내린 눈, 비의 양 등을 감안한 하여 적당 한 때를 합의 해내려는 의사결정의 방법인 것이다. 그리하여 기계적으로 일정 한 날짜를 정하여 농사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묻고 대화하면서 융통성 있게 때에 즈음하여 적절한 농사 행위를 하고 품앗이의 스케줄을 조정하는 합리적인 과정인 것이다.

귀농하는 사람들의 이유나 목적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점은 나이들이 지긋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 하려는, 혹은 도시생활 졸업이후 농촌생활 입학이라는 새로운 삶의 등식을 만들기 위한 시도로써 귀농을 선택한다고 볼 수 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큰일을 도모 하고 사업을 확장하여 외연을 넓히는 것 보다는 작은 것 즉 사소한일을 잘 해나가고 내실을 다지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시절은 순리를 모른다. 때도 모르면서 순리도 모르면 정말 시절이 된다. 모르면 물어야 한다. 수십 년 농사를 짓는 농부가 볍씨 뿌릴 때를 서로 묻듯이…….

귀농 초기 마치 험악한 곳에서 탈출에 성공한 것 같은 안도감과 위안도 잠깐, 얽매임 없이 유유자적 하면서 갠 날 적설이 소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구름이 사립문 사이로 들락거리는 것을 보는 소위 은자의 삶을 동경한 귀농이었으나 그 사소한 희망마저  잘 처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덕무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