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지역 남자의 40%가 외국 여성과 결혼했다. 이에 따라 다문화 가정의 실질적 당사자인 이주여성들을 위한 정책과 다양한 단체가 지자체마다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지역사회 일원 대다수가 편견과 잘못된 정보 속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한국사회 일원이 된 이주여성을 만나 새로운 이웃과 지역사회 일원 간의 교류와 소통을 돕고자 한다. 또한 다문화 가정 이주 여성들의 실질적인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다양한 고민들을 해소하기 위한 도움이 된 제도나 단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자 한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졌습니다.

지라판 핌라맡씨(39)는 서정초등학교(교장 한길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태국 대학교를 졸업해 수학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실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그녀는 벌써 원어민 강사로 활동한지 3년째가 되어간다. 당진교육청에서 이주여성을 원어민 강사로 고용하는 제도가 마련돼 북창초등학교와 순성초등학교를 거쳐 현재는 서정초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유치원부터 6학년 학생들의 방과후 수업을 담당하다보니 아들 승현(10)이와 은혜(7)의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태국은 모국어가 있지만 영어를 많이 사용해요. 처음에 교육청에서 필리핀 이주여성 위주로 원어민 강사를 모집한다고 해서 기대를 안했는데 합격을 해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발령 났을 때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우리 아이들의 친구들이 알고선 놀리진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좀 놀라는 눈치였지만 걱정했던 일은 생기지 않았어요. 수업도 더 신경 쓰게 되고 저도 한국말을 잘 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일부러 대화 중간에 한국말을 사용하기도 했죠. 선생님은 외국인이지만 한국말을 잘하고 있고 너희들도 열심히 공부하면 선생님처럼 외국어를 잘 쓸 수 있다고 이야기 해 주기도 해요.”

승현이도 “엄마가 수업을 하니까 좋다”며 “친구들도 더 관심을 가지고 있고 엄마가 외국인이라고 이야기 하는 친구는 없다”고 말한다.

무뚝뚝한 남자와의 만남

지라판씨와 재성씨(44)가 만나게 된 것은 사촌형 덕분이었다. 지라판씨의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와 있던 사촌형이 지라판씨를 마음에 들어하고 재성씨에게 소개를 시켜준 것이다. 그래서 둘은 몇 차례 만남 끝에 부부라는 연을 맺게 됐다. 지라판씨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있었다고.

“한국에 대해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었고 지금도 한국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혼생활에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태국음식이 한국 음식처럼 매운 편이어서 아주 잘 맞다보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김치찌개에요. 평소에 한국 문화, 한국 남자들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2000년 남편을 만난 거죠. 타국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한국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한국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든 긍정적이었던 그녀도 한국생활, 가족이라는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어 가기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이주 여성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다고.

“태국은 더운 나라이니까 한국이 너무 추웠어요. 엄마가 시집간다고 했을 때 ‘너 추운나라에 가서 살 수 있어?’라고 가장 먼저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대화에도 큰 차이가 있었어요. 서로 일단 말이 잘 안 통하니까 불편한 점도 많았고요. 태국 친구들도 없어서 필리핀이나 베트남 친구들을 주로 만나다 보니 외로움이 컸죠.”

재성씨도 “문화 차이가 가장 힘들더라고요. 한국은 부계사회인데 태국은 모계사회라서 여기서부터 차이점이 생긴 것은 물론이고 30년을 따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같이 사는데 힘들지 않을 수가 없죠. 결혼 초기 어려움은 어느 부부이던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우리는 나라가 다른 것뿐이에요. 승현이가 태어날 무렵 태국에서 2년을 살아보기도 했지만 차이를 인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서로 30년을 달리 살았듯 30년을 함께 살다보면 이런 차이가 없어지겠죠?”

“남편의 믿음으로 사랑하고 이해해요”

지라판씨는 서로가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과 믿음이었다고 한다. 비록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남편이지만 그 마음을 잘 알고 있고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그 대답일 것이라는 것. 이외에도 부부의 믿음은 재성씨가 결혼과 동시에 모든 통장을 지라판씨에게 맡긴 것이다.

“통장을 다 맡기는데 놀랬어요. 다른 친구들은 안 그렇다던데... 한국 부부들도 남편이 통장관리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다 맡기면서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나를 많이 믿어주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이 무뚝뚝하고 제가 생각했던 한국 남자들과는 다르지만 행동을 보면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인지 다 알 수 있어요. 그래도 가족끼리 제대로 놀러갈 시간도 없이 일해서 여행 좀 가자고 조르는데 소용없어요. 좀 쉬고 해야 하는데 너무 바빠서 걱정이에요. 아이들이 놀러가자고 아빠에게 조르면 ‘아빠 바쁘시니까 엄마랑 가자 엄마도 버스 노선표 잘 봐라고 말해요’.”

지라판씨가 칭찬을 하는 내내 다른 곳만을 쳐다보던 재성씨는 “통장에 돈도 얼마 없었어요”라며 농담을 한다. 지라판씨 자랑도 좀 해달라고 했더니 무뚝뚝한 남자답게 “자랑할 게 뭐있대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당진은 제2의 고향, 다시 돌아 왔어요”

지라판씨가 남편을 따라 당진에 온 지도 6년이 넘어간다. 처음 시집와서 산 곳은 당진이지만 중간에 태국에서 살다가 수원에서 살았다. 하지만 처음 결혼생활을 시작한 곳이 당진이기 때문에 남편에게 당진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더랬다. 그녀는 “제2의 고향”이라며 “좋은 공기와 바다, 당진에서 나는 쌀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라판씨는 한국어를 독학으로, 한국음식은 시누이에게 물어보며 적응을 시작하며 살다보니 군내에도 건강가정지원센터나 이주여성을 위한 제도들이 생겨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을 배웠다고 한다.

“김장도 스스로 했어요. 시누이한테 전화해서 ‘이거 어떻게 해요, 이것 좀 도와주세요’ 많이 물어봤죠. 시누이가 가까이 살았던 걸 고맙게 생각해요. 학교에 나가기 전에는 한글어학당에도 자주 나가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요. 여유만 되면 뭐든 이주여성을 위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다 해보고 싶어요.”

지라판씨는 다문화 가정의 지원도 활발하고 가정에 직접 방문해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과 숙제를 돌봐주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주여성들이 가장 속상해 하는 것이 아이들의 숙제나 준비물 하나 챙겨주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며 사소한 일도 도와주는 봉사자들이 감사하다는 것이다.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우리 승현이나 은혜의 숙제를 봐주는 것은 어려워요. 그런데 선생님이 집에 오셔서 꼼꼼히 봐주시니까 너무 감사하죠. 아직 한국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은데 빨리 배워서 애들 숙제도 봐주고 기회가 되면 중학생들도 가르쳐 보고 싶어요. 아직도 한국이 너무 궁금해요.”

지라판씨의 한국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보며 전생에 한국사람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걱정만하시는 부모님에게 한국에서의 생활과 모습을 보여드렸더니 “6.25때는 우리가 도와야 했던 나라가 이렇게 성장이 빠르다니 놀랍다”며 “시집 보내길 잘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올해 90세이신 아버지는 군인이셔서 한국전쟁에 대해 많이 알고 계셔서 관심이 많으시죠. 두분은 전화해도 자식인 저보다 손자 걱정 먼저 하셔요. 애들 잘 키워라, 맛있는 것 많이 해주라는 이야기를 빼먹은 적이 없으시죠. 아이들 잘 키워서 대학에도 보내고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