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밤에 평소 잘 아는 제자로부터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내용은 작은 리(里) 단위 동네에 살고 있고 초등학생 한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학급에 학생수도 5-6명 밖에 안되고, 축구도 못하고 아이의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장래를 위해 한 달전에 읍내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와 대화를 해보면 생각한 만큼 영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해 다시 전학을 시키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다. 그 문제 때문에 오늘도 말다툼을 하고 속상하여 술 한잔을 마시고 나한테 전화하여 일방적으로 자기의 의견이 옳다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전학 갈 때 부부간의 충분한 대화는 있었는지? 그리고 아이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는지 등을 물으니 부인의 성화에 못이겨 일방적인 결정에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가족회의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듣고 또 그렇게 전학 간 사례도 좀 살펴보고 신중하게 결정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었다. 이번에는 다시 전학을 왔을 때 아이가 어려운 점은 없을런지 부인과 아이의 의견도 듣고 신중하게 생각하여 결정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하였다.
그래도 자기는 다시 전학을 시키는것이 옳다는 자기의 의견만 취중에 이야기하는 제자를 생각하니 확실한 답을 기대하고 전화했을텐데 또 한참을 고민할 생각을 하니 그 날은 나도 잠이 안왔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자녀들의 교육 문제만큼은 부부가 깊이 생각하고 대화하고 아이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결정해야 할 일이 아닐까?
현재만 보고 바로 결정하지 말고 먼 훗날을 생각하고, 그래서 지금의 작은 결과만을 보고 일희일비(一喜一 悲)하지 말고, 또 국가도 교육정책만 바꾸지 말고 일관된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市) 승격을 눈 앞에 둔 우리 지역도 먼 미래를 바라보고 모두의 중지를 모아 모두가 만족하는 교육의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제자를 생각하니 자식을 위해 시장에서 공동묘지, 학교근처로 세 번을 이사를 간 맹자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제 다사다난 했던 경인년도 달랑 달력 한 장이 남았다
신묘년인 2011년도에는 우리 교육계도 토끼처럼 부지런하고 귀를 쫑긋세워 내 의견만 내세우지 말고 교육공동체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모두가 공감하는 새로운 교육정책을 세우고 실행하였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이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가 지금처럼 1인당 국민소득 20,000불을 넘나드는 것도 우리 부모님들이 그 어려운 여건에서 허리띠를 동여매고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 는 생각으로 교육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결과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자주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늘 따라 옛 선현들의 말씀이 딱 맞는것 같다
일년을 위해서는 곡식을 심고, 십년을 위해서는 나무를 심고, 국가의 백년을 위해서는 인재를 잘 기르는 교육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