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지역 주민들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해

“축산을 하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축산 농가는 새해인사를 지인들의 안녕보다 소와 돼지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연말 안동에서부터 시작된 구제역이 전국 사방으로 퍼지자 당진도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설마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졸이며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나 당진군 내에서 매몰된 돼지 수는 33,484마리. 지난 5일 합덕읍 도곡리를 시작으로 현재 7농가(1월14일 현재)에서 구제역 신고와 매몰이 이어졌다.

축산인들은 착잡한 심정으로 아침에 눈을 뜨면 달려가는 곳이 축사였다. 밤새 아픈 ‘자식’은 없는지, 어제랑 다른 점이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추운 날씨 탓에 평소와 같이 단순히 코를 흘리는 소만 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이 축산인들의 현재 마음이다.

심정이 어떠하냐고 물으면 축산인 누구나 같은 대답이다.

“설마 우리집도 구제역일까 피말리는 심정으로 기다린다. 한숨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

타지에 사는 자녀들에게 연락이 오면 당분간 오지 말라는 매몰찬 당부만 하고 끊는다고 했다. 축산인은 물론 온 마을주민들도 외부출입을 자제한 채 근신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다.

합덕읍 도곡리에 이어 순성면 나산리에도 살처분이 이어지고 감염경로를 알 수 없게 되자 농가에서는 공기로도 감염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돌만큼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만나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는 일조차 꺼려지고 있다.

한우를 키우고 있는 유모씨는 “내가 왜 축산을 한다고 했는지 원망스럽다”며 “그냥 농사만 지었으면 고통이 덜 했을까 싶기도 하고 자식만큼 귀한 가축들을 다 묻은 집은 오죽하겠나”라고 말했다.

바깥 사정을 알지 못하니 축산인들의 전화통은 불이 난다. 이야기 중간에도 못 받는 전화가 계속 이어졌다. 이틀에 한번 배터리를 충전했던 휴대전화기는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기가 일쑤다. ‘너그 집 돼지들은 괜찮냐, 어느 집은 구제역이랑 비슷한 것 같아 신고했다드라, 누구네는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데도 못 가봤다던데 어쩌냐’는 걱정이 쏟아졌다.

구제역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제역 판정이 난 농가 외에 반경 500m 이내 가축들도 함께 살처분 되다보니 구제역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합덕, 순성지역 13농가 2,445마리 돼지와 소 523마리가 인근 지역 구제역 판정과 함께 위험대상으로 선정돼 살처분 됐다. 또한 돼지가 적기에 출하할 수 없게 되자 늘어난 사료값과 분뇨처리도 문제가 되고 있다. 분뇨는 처리차량이 가지고 가거나 밭 등에 뿌려 비료로 사용해야 하지만 구제역 지역의 분뇨는 처리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호경 양돈협회 지부장은 “외부인 출입 통제로 분뇨 처리장의 접근 자체가 어려울뿐만 아니라 구제역 지역의 분뇨를 거름으로 사용하려는 농가들도 없다”며 “이러다가 환경 피해로 처벌까지 받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돼지도 아는지 울어

살처분한 축산농가 만큼 억장이 무너지는 곳이 있을까. 건너 들은 살처분 현장은 생각보다 더 암담했다. 살처분 현장을 목격한 이에 따르면 돼지들도 눈물을 흘리면서 살처분 장소로 이동한다고 했다. 살처분 장소로 이동하는 내내 우는 돼지들과 상황을 아는지 살려고 도망다니는지 축사로 방향을 트는 돼지들을 몰아내기 위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도움을 주기위해 현장을 방문했던 공무원들은 돌아온 날 밤잠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했다.

현장에 참가한 한 공무원은 “어떤 돼지들은 자기가 죽으러 가는 것을 아는지 운다”며 “하루 종일 돼지 우는 소리를 듣고 집에 오니 환청도 들리고 일부 같이 다녀온 동료 중에는 술을 마시고서야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만난 순성면 이모씨는 구제역 판정을 받은 농가로부터 600m이상 떨어져 있어 다행히 살처분을 면했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돼지 밥만 주고 나면 인근지역 사람들한테 전화 돌리고 받고 하느라 바쁘죠. 이따가는 마을회관에 나가서 방역초소에 서야 돼요. 말이 조심스럽지만 우리집 돼지들은 구제역에 안걸렸으니까 판매가 가능한데 구제역 인근지역에서 자란 돼지를 누가 사겠어요. 특히나 작은 농장들은 순식간에 빚더미에 나 앉는거죠.”

한편 이런 상황에서 롯데마트는 9일까지 저렴한 가격에 수입산 LA갈비를 대량할인 판매하는 ‘통큰갈비’를 출시해 지탄을 받고 있다. 기존 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 통큰 갈비는 롯데마트 당진점에서도 판매됐다. 이에 한우협회 당진군지부는 입장을 밝히고 롯데마트 불매운동에 가세하며 지난 14일 항의방문을 다녀왔다.

“마을회관 방역초소, 경로당 폐쇄”

당진군에는 돼지에게서만 구제역 판정이 난 상황이다. 그나마 젖소 농장들은 우유를 지속적으로 집유해 납품하고 있다. 일부 농장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폐기하기도 하지만 1일 평균 1100리터의 우유가 집유되고 있다.

축산농가들에는 노란색 비닐끈으로 출입이 통제된 채 입간판 세워져 있거나 소독약 분사기계만이 지키고 있었다. 오가는 이 없이 마을에는 개짓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마을회관은 방역초소이자 생필품, 우편물 등을 받는 장소로 쓰였다. 몇몇 집은 우편물을 찾아가지 않아 그대로 쌓여있었다.

가축의 사료들은 사료 공급원들이 중간단계를 거쳐서 건네지고 있다. 일일이 사료차량들이 축사를 방문할 수 없기 때문에 농장별이나 출입이 가능한 차량 등이 중간단계에 맡겨둔 사료를 공급받아 가축들에게 줄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24시간 3교대로 방역초소를 지키며 차량 등이 지나가면 소독약을 뿌리는 일을 도왔다. 몽골텐트는 추위를 버텨내기 어려워 인근의 도움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임시 설치해 방역을 진행하고 있다.

<관련기사 2면, 3면>